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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2월 주점에서 맥주 5병 정도를 마신 뒤 밤에 귀가했다. 이후 자정쯤 아내에게 “집이 당신 명의니 집을 담보로 1000만원 대출을 받아 돈 좀 달라”고 했다.
이에 아내는 대출 요구를 거절하며 안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고, 격분한 A씨는 베란다 수납장에서 흉기를 꺼낸 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자녀 중 한 명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A씨는 1973년 혼인한 이후 자신에게 일정한 소득이 없고 실질적으로는 아내가 식당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자녀들을 양육한 데 대해 열등감에 사로잡혀 오랜 기간 가정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A씨는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후 흉기를 다시 베란다에 놓는 등 범행도구의 이용과정에서 사물 변별능력을 보였다”며 “범행 이후 죄책감에 수면제를 먹고 극단선택을 시도한 것을 보면 윤리적 의미를 판단하는 의사 능력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부부의 인연을 맺은 배우자를 살해하는 행위는 가장 존엄하고도 중대한 법익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함과 동시에 혼인 관계에 기초한 법적·도덕적 책무를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며 “가족 간의 윤리와 애정을 무너뜨리고 남아 있는 자녀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남겨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했다.
A씨는 재판 결과에 불복했으나 2심 법원은 항소를 기각했으며 대법원도 같은 형량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