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한 형제"…연말 빠지면 섭섭한 베토벤 '합창'[알쓸공소]

장병호 기자I 2023.12.15 14:36:57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역작
히틀러 생일 연주 등 '흑역사' 있지만
시대 불멸의 '화합' 메시지로 큰 사랑
국내 대표 악단들, 연말 대거 무대로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말 분위기가 점점 더 무르익고 있습니다. 공연계에서 발레 ‘호두까기인형’ 못지않게 연말 빠트리면 섭섭한 공연이 하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베토벤이 54세였던 1824년 초연한 작품인데요. 베토벤이 쓴 마지막 교향곡이자 베토벤의 최대 역작으로 손꼽힙니다.

◇평화·화합의 상징, 송년 대표 레퍼토리 자리매김

서울시향의 2022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 장면. (사진=서울시향)
원래 이 작품에는 ‘합창’이라는 제목이 없습니다. 4악장에 등장하는 성악 부분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는데요. 베토벤이 ‘합창’을 발표하기 이전에도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하려고 한 시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보와 함께 실제 연주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합창’의 백미는 바로 이 4악장입니다. 4악장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4명의 성악가와 함께 혼성 합창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가 쓴 ‘환희의 송가’입니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라는 가사 덕분에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베토벤은 1822년 런던필하모닉협회(현 왕립필하모닉협회)의 위촉을 받아 교향곡 9번을 작곡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작품 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1792년 실러의 시에 감동을 받아 곡을 붙이려고 했다고 하니까요. 완성된 작품은 1824년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 극장에서 초연했는데요. 당시 청력을 잃어가던 베토벤이 청중의 갈채를 알아채지 못하자 알토 카롤리네 웅거가 주의를 환기시켜 베토벤이 청중의 환호에 답례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희망을 담은 노래지만, ‘합창’은 정치적 행사에서 연주됐던 ‘흑역사’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20세기 초반 히틀러의 생일 기념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된 곡이었다고 하네요. 일본이 1942년 태평양 전쟁 개전 1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음악회에서도 ‘합창’이 연주됐다고 하고요.

그럼 ‘합창’이 연말에 연주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인 1918년 12월 31일 오후 11시 연주한 것이 시초로 여겨집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지금도 매년 12월 31일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에선 1948년 11월 서울시립교향악단(당시 명칭 서울교향악단)이 처음으로 ‘합창’을 연주했습니다. 이후 여러 악단에서 연주하며 송년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츠베덴·잉키넨·정명훈의 3색 ‘합창’

지휘자 정명훈과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사진=롯데문화재단)
올해도 국내 대표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로 ‘합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시향은 내년 1월 정식 임기를 시작하는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과 21~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2023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의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선보입니다. 소프라노 서선영,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우경, 베이스바리톤 박주성, 그리고 국립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이 함께 하는 무대입니다.

이날 공연에선 ‘합창’ 외에도 작곡가 신동훈의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도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입니다. 서울시향이 LA 필하모닉, 밤베르크 심포니와 공동으로 위촉한 곡인데요. 예이츠의 시 ‘1919년’과 작곡가 알반 베르크에게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합니다. 신동훈 작곡가에 따르면 “절망적인 세상에서 낭만을 노래했던 시인과 작곡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합니다.

KBS교향악단은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과 오는 20일 롯데콘서트홀,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797회 정기연주회를 열고 ‘합창’을 선사합니다. 소프라노 홍혜승,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박승주, 바리톤 최기돈과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인천시립합창단이 출연합니다.

이번 KBS교향악단 무대에선 국내에서 듣기 힘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방랑자와 폭풍의 노래’도 만날 수 있습니다. 6개의 성악 파트로 이뤄진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인데요. 어느 방랑자가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베토벤의 ‘합창’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휘자 정명훈과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이날 롯데콘서트홀에서 송년 음악회로 ‘합창’을 선사합니다.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는 정명훈 지휘자가 남북한 교류를 목적으로 국내 오케스트라 전·현직 단원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연주자들을 모아 2017년 창단한 악단입니다.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강요셉, 바리톤 강형규 그리고 국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이 함께 합니다.

정명훈 지휘자는 2008년 서울시향 음악감독 재직 시절 ‘합창’을 연말 레퍼토리로 선보이며 ‘합창’ 열풍을 다시 이끈 주역입니다. 베토벤을 “평생 자유를 위해 싸워온 음악가”라고 표현하며 베토벤에 깊은 애정과 존경을 나타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날 공연에서도 정명훈 지휘자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통해 한마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KBS교향악단이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였던 2022년 제785회 정기연주회의 한 장면. (사진=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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