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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화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은 ‘개화기의 기이한 화가’로 불린다. 회화에 천재적 소질을 타고 났지만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는 유치하고 자유분방한 회화미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오원은 일자 무식에 자유분방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며 “10년 전 봤던 그림도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지만, 임모(본을 보고 옮겨 그림)든 방작(다른 작품을 본떠 그림)이든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자신이 간파한 회화미를 감각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김현권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전시 도록에 실린 글에서 “장승업은 초본을 만들거나 연습한 후에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먹과 필을 한 치 거리낌도 없이 비단과 종이 위에 휘둘러 묘경의 세계를 실현하곤 했다”고 말했다.
오원은 187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해 당시 화단에 성행했던 화풍을 익히고 1890년쯤에는 청대의 여러 화풍을 습득해 새로운 작품을 그렸는데 이를 후대에서 ‘오원화풍’이라 칭한다. 그 특징은 “왜곡과 과장을 통한 해학적 미의 발현”이다.
오원이 활동한 개화기에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남긴 회화적 경향과 19세기 중후반의 화풍이 지속되면서도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문인화를 지고로 여겼던 전통적 회화관이 가라앉고 예술의 가치를 예술 자체에서 찾으려는 순수예술적 색채가 짙어갔다. 이는 감각적인 청대 화풍을 받아들이게 했다.
최완수 실장은 “사대부층이 몰락하고 상공인과 부농이 부상하던 시대에 활동한 오원은 함축적인 감필미(減筆美)를 추구한 추사의 화풍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천부적인 회화미를 감각적으로 표출하는 능력을 발휘, 당시 그림을 살 능력이 있던 계층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또 최 실장은 오원이 일자무식이었던 탓에 그의 그림에 쓰인 서예는 대부분 심전 안중식 등이 대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오원의 화풍은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 소림(小琳) 조석진(1853~1920)에게 이어지고 백련(白蓮) 지운영(1852~1935)과 위사(渭士) 강필주(1850년대~?)에게도 영향을 줬다. 전시는 오원의 그림 40여점을 비롯, 심전·소림·백련·위사의 작품 등 총 100여점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민영환이 소장했던 오원의 그림 중 8마리 말을 4폭에 나눠 그린 그림도 전시된다.
좌우 2m가 넘는 두루마리 작품인 ‘계산무진(溪山無盡)’ 등은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다. 일부만 공개됐던 ‘심산임계(深山臨溪)’는 8폭이 모두 전시되며, 10폭짜리로 구성된 ‘귀거래도(歸去來圖)’도 8폭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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