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리기자] 이봉화 복지부 차관이 실제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쌀 직불금을 신청한 것을 계기로 `쌀 직불금`이 정가의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비리로 규정하고 국정감사 이슈로 부각시킬 태세이고, 야당은 복지부 차관 경질 카드로 활용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쌀 직불금` 문제는 여야의 정치 쟁점으로만 끝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경제부 김보리 기자가 쌀 직불금 논란에 대한 의견을 전합니다.
쌀 직불금은 쌀값 하락으로 울상이 된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착한`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목표가격이 80㎏ 1가마당 17만원이고 시장평균가격이 14만원이라면 차액 3만원의 85%인 2만5500원을 쌀 농가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우르과이라운드 협상(UR), 한미FTA 등으로 쌀 값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만들어진 이 `착한` 제도가 왜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일까요?
이는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연결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쌀 직불금을 받은 사람은 99만여명으로 이중 농사를 짓지 않은 28만명이 한 해 1683억원을 챙겼습니다. 지난해 쌀 직불제 예산 1조 6672억원의 거의 10%에 이릅니다. 시민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농사를 짓지 않는 엉터리 농민 28만명 가운데 공무원이 4만명, 특히 서울과 과천 지역에 거주하는 공무원이 520명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혈세로 녹을 먹는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들이 어떻게 농민들의 몫을 챙길 수 있느냐"는 원성을 듣기에 충분합니다. 실제 농사를 짓는 농가 53만가구 중 13.4%에 달하는 7만1000여가구가 직불금을 제 때 신청하지 못해 정작 직불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화가 치밉니다.
하지만 쌀 직불금 문제를 농민의 몫을 가로챈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로만 접근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2005년 3월31일 개정된 `쌀 소득 보전법`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직불금을 가로챌 수 있는 여러 구멍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쌀소득보전직불 제도의 문제는 실제 전혀 농사를 짓지 않고 땅만 소유한 `부재지주`들도 농지 소재지의 이장·통장에게 간단한 자경증명서 한 장만 받으면 별 어려움없이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농사를 안 짓더라도 `농지이용 및 경작현황 확인서`만 받으면 쌀 직불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더 큰 허점은 쌀 직불금 제도가 땅을 사놓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의 농지소유 제한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996년 이후 취득한 땅은 자경(自耕)을 해야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데,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빌려준 소유자들이 쌀 지급금을 받으면 `자경`하고 있다는 방증이 됩니다. 땅만 사놓고 농사는 임대농에게 맡긴 소유자들에게 쌀 직불금 제도는 `자경`확인도 받고 돈까지 챙길 수 있는 `꿩먹고 알 먹는` 제도인 셈입니다.
농지 소재지가 아닌 주소지에서 직불금 지급 신청을 받도록 한 것도 오히려 농사를 짓지 않는 부재지주들에게 더 편리한 방편입니다. 다른 지역 행정기관은 논을 실제로 누가 경작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니까요.
현재 쌀 직불금을 둘러싼 논란은 이봉화 차관이 경질되는지, 다른 고위 공직자는 포함되지 않았는지 등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쌀 직불금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그동안 소홀했던 것이 무엇이며, 왜 입법과정에서 이같은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쌀 직불금 논란은 비록 선의(善意)에서 출발한 제도라 하더라도 치밀한 구상이 없다면 오히려 수혜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예산 10% 절감을 약속했습니다. 예산을 절감하려면 살림을 야무지게 살아야 하는데, 쌀 직불금 외에도 세금이 셀까봐 걱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1994년 이후 정부가 투입한 60조원 이상의 농어촌구조조정자금, 영업용 차량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매년 2조원 이상 지출하는 유가보조금 제도 등도 그렇습니다.
예산을 써야 할 곳에는 당연히 써야 합니다. 하지만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면 책임 공방에 앞서 누수의 원인을 막는 것이 우선입니다. 쌀 직불금 논란이 단지 이봉화 차관의 경질을 둘러싼 정쟁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