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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자국영토 공습에 '냉가슴' 앓는 이라크…이유는 '물'

이정훈 기자I 2015.08.02 19:14:51
[이데일리 뉴스속보팀] 터키 정부가 국경을 넘어 쿠르드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이 근거지를 둔 이라크 북부까지 열흘 째 공습하고 있지만 이라크 정부는 냉가슴만 앓고 있다.

공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이후 이라크 정부의 공식 반응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가 28일 트위터 계정에 올린 “터키의 공습은 이라크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글 정도다.

이에 대해 터키 외무부는 “터키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이라크를 지원했는데 PKK 공습에 부정적이라는 데 실망스럽다”며 “이라크 정부는 PKK가 국경을 넘어 터키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켰다”고 반박했다.

이라크가 터키에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IS 사태 해결을 위해 터키 정부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할 뿐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자국 내 물 부족 사태 해결의 열쇠를 터키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4일 알아바디 총리의 트위터 글 마지막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터키 정부의 주권침해를 비판하면서 뜬금없이 “이라크 내각은 합의에 따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물 방류량을 늘리라고 터키 정부에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분이 터키 정부에 대한 요구의 ‘본심’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이라크는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이라크의 젖줄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수량이 정상의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이 두 강의 발원지가 모두 터키인 탓에 두 나라는 1960년대부터 ‘물 싸움’을 벌여왔다.

물을 둘러싼 양국의 마찰은 터키가 낙후한 남동부를 개발한다며 GAP프로젝트라는 공공사업을 1970년대부터 시작하면서 더 첨예해졌다.

이 사업의 핵심은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수력발전과 관개용수용 댐 22개를 건설하는 것이다. 내년 완공될 초대형 일리수 댐이 대표적이다.

강수량이 적어 그렇지 않아도 물이 부족한 이라크 입장에선 터키가 두 강의 상류를 댐으로 막아 수량을 조절하겠다고 하면 국가적 위기를 맞게될 수도 있다.

강의 하류에 있어 물이 귀한 이라크는 2009년 터키가 두 강의 수위를 5m까지 유지하는 대신 터키로 원유 수출을 늘리고 테러 조직 PKK가 터키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터키의 ‘수공 전략’의 위력은 올해 5월 이라크와 IS가 이례적으로 동시에 터키 정부의 수량 조절을 비난한 데서 이미 드러났다. IS가 점령한 시리아와 이라크 서부 지역은 유프라테스강이 관통한다.

이라크가 물 부족 국가인 만큼 강의 물 조절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사담 후세인도 이라크 서부의 반정부 세력을 막기 위해 유프라테스강의 물을 끊은 적이 있고 IS도 라마디를 점령한 뒤 라마디 댐을 닫기도 했다.

여러 나라의 영토를 지나는 강의 수량을 공평하게 나누는 국제적 협약이나 강제 규정이 없어 이해 당사국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점도 이라크 정부엔 불리하다.

지난달 31일과 1일 바그다드와 바스라 등에서 열린 대규모 ‘민생고 시위’도 이라크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시민 수천 명이 참가한 이 시위에선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불볕더위를 이기는 데 꼭 필요한 전력과 상수도 부족에 항의하던 시위는 급기야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알아바디 총리가 달래기에 나섰지만 민생고에 지친 심상치 않은 민심은 IS만큼 이라크 정부에 위협적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터키 정부가 이라크 정부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영토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폭격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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