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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시장은 "동면 중"

이학선 기자I 2004.05.04 15:33:50

CP발행량·거래량 "반토막"..CP금리 "착시효과"
기업, 경기 불확실로 발행 꺼려..정부, 무원칙 대응도 한몫

[edaily 이학선기자] 기업어음(CP) 시장이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월 SK글로벌 사태 이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CP시장은 현재 발행량과 거래량 모두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향후 경기전망이 불확실해 기업들이 단기자금 조달을 꺼리는 데다, CP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아 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발이 맞지 않는 정부정책도 CP시장 죽이기에 한몫하고 있다. ◇CP물량 반토막..신뢰상실·경기부진 영향 CP는 기업들이 단기자금을 끌어쓰기 위해 발행하는 무담보 어음이다. 신용도만 보장되면 곧바로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단기자금조달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SK글로벌 사태 이후 CP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었다. A2등급의 SK글로벌이 무너지는 마당에 여타 기업 CP를 어떻게 믿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신용카드사의 유동성 위기까지 겹쳐 카드사 CP를 중심으로 발행 여건이 크게 악화됐고, 투신사와 은행신탁의 수신 감소로 매수기반마저 무너지는 이중고를 겪기 시작했다. 실제로 SK글로벌 사태 직전 54조원이었던 CP매출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21조억원으로 반토막났다. CP 유통의 척도가 되는 할인잔액도 33조원에서 16조원으로 뚝 떨어졌다. 수요가 없으니 기업들이 발행을 할 수가 없고,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양호한 신용도를 가진 기업조차 투자의욕을 잃어 CP 발행을 꺼리는 것이다. ◇CP금리, 하향안정화..착시효과 한몫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CP 금리는 하향안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행물량이 크게 줄어든 대신, CP를 매입해야 하는 고정수요로 인해 수요가 많은 듯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주택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공사가 발행한 CP와 유동성과 신용보강이 이뤄진 ABCP, 카드캐피탈 CP에 국한된 얘기지, 여타 기업 CP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든 지경이다. ABCP는 ABS처럼 매출채권 등에 신용보강을 거쳐 발행한 CP로 도로공사 ABCP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기업 단기조달금리 잣대로서의 CP역할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이스채권평가 방혁준 선임연구원은 "ABCP를 발행하며 거치는 유동성 보강 과정에서도 기준물 금리는 CP가 아닌 3개월 CD가 되고 있다"며 "CP고시금리는 신뢰도가 떨어져 CP시장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증권원협회가 고시하는 3개월물 CP 유통수익률은 신용등급 A1이상의 기업이 발행한 CP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결국 우량기업의 CP금리가 업계 전체의 자금조달상황을 대표하는 듯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정부, 땜질처방이 CP 침체 키워 CP시장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땜질식 처방이 CP시장 침체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재정경제부와 협의를 거쳐 올해부터 자산총액 70억원 이상의 기업에 대해 CP 발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CP발행기업이 1만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금감원은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달 금감원은 MMF(초단기수익증권)가 편입할 수 있는 CP를 신용등급 A2 이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MMF가 CP의 최대 수요자임을 감안하면, 결국 반년도 안돼 기업의 단기자금조달 통로를 막아버린 셈이다. 이 경우 지난달 말 기준으로 신용등급 A3+인 금호타이어, 삼성테크윈, 한솔제지, 현대미포조선 등이 발행한 CP는 MMF 편입대상에서 배제된다. A3등급인 동아제약, 대우정보시스템, 워커힐, 하나로통신 등의 CP도 MMF 편입대상에서 제외된다. 방혁준 선임연구원은 "단기자금시장을 시장의 필요악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상태에 빠진 CP시장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책에 일침을 가했다. 방 연구원은 "현재 CP매입 입장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차입금에서 차지하는 CP발행 규모"라면서 "CP발행총량을 확인할 수 있게끔 CP총액관리제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에서 차입한도제(backup Iine of credit)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경우 사실상 은행 보증이 필요해 CP금리가 크게 오를 여지가 있다"면서 "기업입장에선 조달금리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할 수 있는 만큼 현실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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