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공동락특파원] 기업들의 합병은 남녀간의 결혼에 비유될 정도로 많은 준비와 사후관리가 필요한 작업입니다. 힘들여 노력한게 많은 만큼 얻는 것도 크겠지만 반대로 “차라리 그냥 있었더라면”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합병 당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거대 미디어 기업 AOL-타임워너와 비벤디 유니버셜도 역시 지금 고민이 한참인가 봅니다. 국제팀의 공동락 기자가 "세기의 사건”으로까지 불렸던 이 합병들이 현재 어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 2000년 전세계 미디어산업은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었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라는 들뜬 기대 속에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미디어의 영역이 탄생했고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미디어 기업들은 이합과 집산을 통해 자신들의 생존전략을 다시 재편해 나갔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미디어 기업간의 짝짓기를 소개하는 기사, 사진과 함께 향후 업계의 판도 변화에 대한 예측과 분석을 마치 전시 브리핑처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끝에는 초대형 미디어 공룡의 탄생으로 인간이 조만간 미디어에 의해 지배될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지적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인간이 미디어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는 과연 이 공룡(?)들이 제대로 밥벌이라도 해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으로 180도 방향을 선회해 버렸습니다.
일부에서는 경기침체로 미디어 기업의 가장 큰 수입원인 광고시장이 침체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수익성이 애초부터 보장되지 않은 불안한 동거였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합니다.
물론 다 근거가 있는 분석이지만 저는 합병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 역시 두 거대 미디어 기업들을 부진하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간단한 몇가지 사례를 들어 두 미디어 공룡의 합병후유증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한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AOL-타임워너,직원들의 신뢰감 상실
2000년 11월. 미국의 온-오프라인을 통합하는 거대한 미디어 기업 AOL-타임워너가 탄생했습니다. AOL-타임워너의 탄생은 그 출발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인터넷과 컨텐츠의 조화에서 부터 발빠른 호사가들은 신경제와 구경제의 만남이라는 최고의 미사여구를 쏟아부으며 두 기업의 합병을 축하했습니다. 정말 시작 만큼은 심히 장대했었죠.
그러나 불과 30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 당시 화려했던 미사여구는 우려와 불안으로 변해 앞날을 내다 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회사의 주가는 연일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며 각종 신기록을 양산해내는 불명예스런 기록의 제조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지난 3월 AOL-타임워너 경영진들은 직원들이 굳이 회사의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경쟁사의 메일 계정을 사용해도 좋다고 밝혔습니다. 얼핏 들으시면 한 회사에서 같은 메일 계정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배경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두 회사가 통합하면서 당시 경영진들은 경비 절감과 함께 두 회사 통합의 상징적인 의미로 AOL계정으로의 메일 통합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사전 준비작업의 미흡으로 새로 통합된 회사 메일계정은 하루도 조용하고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업무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합병이 없었다면…”하는 볼멘소리들이 여기 저기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거듭된 항의로 다른 메일 계정의 사용이 승인되긴 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AOL메일=사고뭉치”라는 인식과 “직원들의 메일계정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회사”라는 불만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비벤디 유니버셜,국경은 넘어도 문화는..
프랑스 최대의 미디어 기업인 비벤디의 유니버셜스튜디오의 모기업인 시그램의 음악 및 영화사업 인수도 역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사건 중에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벤디 역시 AOL-타임워너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합병한 이후 주가가 60%가량 폭락하고 부채도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어난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죠.
비벤디의 문제는 서로 다른 기업들이 합쳤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국경을 달리하면서 오는 문화적인 갈등과 충격이 합병 후유증으로 확장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자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음악을 더욱 선호할수 밖에 없는 미디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프랑스와 캐나다라는 대서양을 넘어선 비벤디의 합병은 마케팅이나 경영면에서도 당연히 파괴력이나 효율성이 다른 경쟁사에 뒤질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문화대국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이 문제의 심각성은 앞으로도 절대 간과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합병은 과연 미친짓인가?
흔히 기업간의 인수합병을 결혼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형성된 두 가지 기업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다는 것이 쉽지않다는 점을 빗댄 표현일 겁니다.
그러나 기업의 인수합병은 결혼에서의 신랑과 신부처럼 서로의 이해와 인내를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수익이라는 옥동자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신랑도 신부도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기업들의 인수합병은 그 준비만큼 결과를 얻기도 힘든가 봅니다. 결혼만큼 합병도 과연 미친짓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