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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보통사람의 월드컵

정명수 기자I 2002.06.19 17:56:47
[edaily 정명수기자] 월드컵으로 온나라가 잔치 분위기입니다. 세계 10강안에 드는 강팀을 차례로 격파했으니 당연합니다. 선거, 주가, 환율 등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 문제는 하루쯤 완전히 잊어버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 산다는 것이 뭡니까. 붉은 옷, 붉은 두건 쓰고 시청 앞 도로를 점거한 채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칠 기회가 평생에 또 있겠습니까. 경제부 정명수 기자가 보통사람, 생활인의 눈으로 월드컵을 바라봤습니다.


5살짜리 우리 집 아이가 TV를 너무 밝혀서 한달전에 교육적 차원에서 TV를 창고에 쳐박아놨습니다. 월드컵 시작전에 우리 팀이 평가전을 할 때도 일(?)이 바빠서 중계방송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팀이 폴란드하고 붙을 때 회사 동료들과 돈 내기를 했습니다. 저는 냉정하게 0대2로 우리가 진다에 1만원을 걸었습니다. 솔직히 월드컵 첫 승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겼습니다. 돈은 잃었지만 기분 좋았죠. 창고에 있던 TV를 다시 꺼냈습니다. 월드컵 기간만 TV 를 보자고 했습니다.

미국 전은 오후 3시부터 경기를 해서 회사에서 봤습니다. 채권 마감 시황을 쓰는 둥 마는 둥하고 경기를 봤죠. 안타까움에 소리도 지르고, 헛발질하는 선수들 욕도 하고... 동점 골이 터졌을 때는 너무 좋아서 뛰다가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포르투갈하고 경기는 피치못할 약속이 있어서 여의도의 한 생선구이 집에서 봤습니다. 최소한 비기면 16강이라서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죠. 16강이 확정되는 순간 그 가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건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축구 때문에 여의도에서 차 잡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붉은 티를 입은 젊은 청년들이 펄쩍펄쩍 뛰는 가운데서 빈 택시를 잡아 최대한 신속하게 집으로 귀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8강을 다투는 이탈리아 전. 16강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16강이 확정되는 동안 한번도 가족들과 중계방송을 보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이번에는 맥주 캔을 사들고 일찍 집으로 갔습니다.

정말 극적인 역전승. 온가족이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을 연호했습니다.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경제가 어쩌고, 채권시장이 어쩌고, 기사가 어떻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출근해서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축구 얘기 뿐이고... 미국 마이크론 때문에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해서 주식시장 분위기는 썰렁하지만 22일 8강전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토요일 오후 경기니까 가족들을 데리고 거리 응원에 나설 참입니다.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를 이어가자,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을 경영에 응용하자, 월드컵 마케팅이 어쩌구 저쩌구..."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수백만명이 거리 응원을 하며 "대~한민국"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 그 자체로 생활에 작은 일탈을 경험하는 것. 그것으로 족합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여운이 남겠죠. 그리고 다시 생활로 돌아갈 겁니다. 수십만이 운집했던 시청앞에도 차들이 쌩쌩 달리겠죠. 늦긴했지만 빨리 붉은 악마 티를 하나 장만해야겠습니다. 시청앞 광장에서 응원할 기회가 또 오라는 법이 없으니까. 물론 스페인을 잡고 4강전도 이겨 결승전에 오르면 기회가 더 있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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