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가 감옥에서 또 살인…대법, 사형 과하다 본 이유는?

박정수 기자I 2023.07.13 12:22:10

무기징역 확정받고 복역 중 교도소서 동료 수용자 살해
2심 사형→대법, 파기·환송…"사형 선고 형 무거워 부당"
대법 "2심, 불리한 측면만 참작…원심의 양정 수긍 어려워"
20대 나이, 재판 중 자살 시도, 은폐 시도 후 범행 인정 등 고려했어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교도소 안에서 동료 수용자를 상습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20대 무기수에 대해 대법원이 형이 무거워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28)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의 형이 무거워 부당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계룡에서 금을 거래하러 온 40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하고 금 100돈과 승용차를 빼앗은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후 A씨는 2021년 12월 공주교도소 수용거실 안에서 자신이 정해준 수칙을 안 지켰다는 이유로 각종 놀이를 빙자해 40대 동료 수용자의 목을 조르고 가슴 부위를 발로 여러 차례 때리는 등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A씨는 공범들과 함께 피해자의 특정 신체부위를 빨래집게로 집어 비틀고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히는 등 가혹행위를 이어갔으며,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날까 봐 피해자가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가족이 면회를 오지 못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지병인 심장질환 이외 건강상 문제가 없었던 피해자는 불과 20일 만에 전신출혈과 염증, 갈비뼈 다발성 골절 등으로 숨졌다.

1심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을, 2심에서는 사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재소자가 동료 재소자를 살해한 사건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에게 무기징역 이하의 형을 선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사형 선고의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 대해 사형 선고는 형이 무거워 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이 적시한 양형 사항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 포함돼 있음에도 원심이 양 측면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불리한 측면만 참작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원심의 양정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우선 원심은 피고인에게 사회적 유대관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해 불리한 정상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26세였는바, 20대의 나이라는 사정은 종래부터 다수 판례가 사형 선고가 정당화되기 어려운 사정 중 하나로 밝혀온 바와 같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원심은 피고인이 교도소에 수용돼 있던 사람으로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자신의 성행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살인 범행을 저질렀음을 이유로 그 죄책을 매우 무겁게 봤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교도소는 폐쇄적이고 좁은 장소에서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다른 수용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곳으로서, 교도소의 특성이 수용자들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음을 고려하고 특히 이 사건 당시 교정기관이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수용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어려울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의 살인 고의가 미필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면서도, 범행 동기가 불량하고 방법이 잔혹해 그 죄책이 흉기를 사용해 확정적 고의로 살해하는 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봤다면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범죄의 내용과 처벌 사이에 비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장기간 누적된 폭행으로 인한 것인바, 이러한 폭행은 개개의 행위시마다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한 확정적인 고의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목적과 미필적인 고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며 “여기에 피고인이 살인 범행에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이 사건의 피해자가 한 사람에 그쳤다는 점 또한 중요한 사정으로 다른 유사 사건에서의 양형과 그 형평성을 비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은 ‘사람을 살해할 경우에는 그로 인한 충격 때문에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전제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을 불리한 정상으로 봤다”면서 “그러나 위의 전제를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피고인의 범행 은폐 시도를 이례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은폐 시도 이후 범행을 인정하고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이 사건의 전말을 순순히 밝혔던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 유족에게 금전적 배상 등을 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은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으나 피고인과 같이 사회적 유대관계가 없어 합의 할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피고인은 1심에서 대부분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일부 법리적인 주장을 했다가 원심에서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며 “피고인이 결국 범행을 인정하고 재판 중 자살을 시도한 사정까지 고려한다면, 금전적 배상 또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무기징역형 집행 중 다시 무기징역형을 선고한다는 사정만으로 그 형이 무의미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모두 종합하더라도 피고인을 중한 형으로 처단해야 할 사정이 있다고 수긍할 수는 있겠으나, 사형의 선택기준이나 다른 유사 사건과의 일반적 양형의 균형상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사형을 선택한 것은 사형 선택의 요건에 관한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으로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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