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어제, 기자는 북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소식이 전해진 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상하이 시내의 한 북한 식당에서였다.
쌀쌀해진 이곳 날씨에 일전에 맛봤던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우리 땅 연평도에 100여발의 포탄이 퍼부어진 이날 북한 사람의 표정을 그나마 엿볼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한적했다.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나 현지로 파견된 주재원, 교민들이 상당수 자리를 메우는 곳이었지만 이날 저녁 이 식당을 찾은 한국인은 우리 일행과 연평도 일을 모르는 듯한 한 무리의 여행객 뿐이었다.
20대 초반 나이의 식당 여급(복무원)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전혀 모르는 듯한 미소로 대했고, 그 표정 앞에서 우리 일행도 딱딱한 표정을 지키고 앉아있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저녁 값을 계산하면서 직급이 좀 높아 보이는 여급에게 "오늘은 손님이 적어뵈네요"하고 물었다. "오늘 좀 그렇습니다"하는 답과 함께 그는 알듯 말듯한, 어찌보면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더는 묻지 못했다.
언뜻 그 표정은 낮에 벌어진 일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지난 봄 천안함 사건 이후 한참동안 썰렁했던 이 곳 분위기를 떠올렸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했던 시점에 북한 식당을 찾은 경험이 가능했던 건 이곳이 북한에 가장 우호적인, `유일한 맹방`인 중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통로를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중국이 베푸는 물심양면의 지원없이 북한이 여태껏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우연이겠지만 전날 평양에서는 중국과 북한 사이에 `경제무역합작협정`을 체결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에게는 `큰 형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까지 북한에 강한 비난을 가하고 있지만 중국은 "관련 보도를 예의주시 하고있다"는 게 아직까지는 전부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사건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남한의 섬에 포격을 주도한 측은 분명히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중국 외교부는 "이후 유관 상황이 사실에 부합되는지 확인되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한국 언론을 인용해 북한의 선제 공격에 한국이 피해를 입었다는 상황을 전했던 중국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이튿날 아침 신문에는 `북한과 남한의 포격전`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헤드라인을 달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선제공격을 주장한다"는 제목으로 이번 일을 다뤘다.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신중 보도`를 주문했을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든 대목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북한의 맹방을 자처하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한 국가의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천안함 사태와는 또 다르다.
백번 양보해 북한 측 주장대로 우리 군의 훈련에 대한 대응포격이었다 하더라도, 이번 도발은 게다가 민간의 피해까지 야기한 중차대한 사안이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한 제네바 협정을 위반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북한이 지금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제 결의를 수차례 무시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힘이 실리는 것은 중국의 판단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안함 사태 때 미온적이었던 러시아까지 북한을 비난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모호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에는 `큰 형님`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대국`이기를 포기하는 선택일 수 있다.
지구상 어떤 국가보다도 북한에게는 관대한 중국이지만, 또 가장 북한의 체제에 대해 잘 알고, 내부 사정에도 정통한 나라가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이번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만큼은 더욱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고, 사실에 기반한 솔직한 입장 표명을 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