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비정규직이라고 다 똑같은 비정규직은 아니다. 하나의 공장을 예로 들어 보자. 정규직과 함께 생산라인에서의 사내하청 근로자가 있다. 하청사에서 파견나와 생산현장에 상주하는 직원도 있다. 여기에 건물관리인, 배식담당자, 안내원, 미화원 등 시설관리인들도 있다. 이들의 근무 형태도 사내하청이냐 계약직이냐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 어디까지가 정규직과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소위 비정규직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경총이 개최한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인하대 교수)의 강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은 이같이 지적했다. 대립 일변도의 노사관계를 반영한 현재의 노동관련 용어들을 학계가 명확하게 재정립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일례로 노사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의 경우 비정규직 노조는 약 1만3000명의 근로자를 비정규직이라고 통칭했다. 반면 사측은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실제 라인에 투입되는 약 6000명이 정규직 전환을 검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라고 봤다. 같은 말이지만 그 해석에 따라 2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노사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내하청, 불법파견 등 다양한 수식어를 붙인다. 일반 시민들이 가치판단에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김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노동자냐 근로자냐에 대한 논의부터가 다양하다. 비정규직도 비전형근로자, 한시·계약직을 뭉뚱그린 말로 상황에 맞춰 쓰기로 한 이후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득세한 것일 뿐”이라며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이미 사회화가 된 용어를 되돌리기는 힘들지만 노사 양측이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달 1일 노동절(근로자의 날)이 또 찾아온다. 이 기념일을 부르는 말 자체가 갈려 있을 정도로 노사간 용어갈등은 첨예하다. 일종의 프레임 갈등이다.일각에서는 대립 일변도인 노사관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상생’(相生)을 ‘상성’(相成)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함께 생존해야 하는 시대는 갔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한다. 과거 노동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굳어져버린 대립 일변도의 노동관련 용어들을 노사가 머리를 맞대어 재정립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