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전용준 칼럼니스트] 지난 2일 네덜란드 전이 끝난 후 핌 베어벡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 발언이 일파만파다.
K리그 전체에 대한 정면 도전을 선언한 동시에 선수 한 개인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파장이 뻔히 보이는 발언을 줄줄이 쏟아냈다.
베어벡 감독은 분명히 이 발언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반응을 익히 예상했을 것이며 거기에 대한 후유증도 계산했을 것이다.
그가 네덜란드인이며 이미 히딩크 감독이나 아드보카트 감독 등을 보필하면서 옆에서 언론 활용법이라든지 여론 조작법을 충분히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살펴보면 너무 경솔한 판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우선 각 프로팀 감독을 포함해 K리그 전체 종사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프로팀이 대표팀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이 문제였다. 공존공생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담보한 발언을 했다면 이런 식의 적대적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축구 풍토가 늘 그렇듯 국가대표팀 감독은 늘 공격받는 자리이다. 특히 베어벡 감독은 지금까지 뚜렷한 성적이나 경기 내용을 보여준 적이 많지 않다. 시기적으로나 기간적으로 뭘 보여줄 기회도 없었거니와 보여주지도 못한 상황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외부로부터 공격받기 좋은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폭탄을 먼저 던져 선공을 했다는 점에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 히딩크 감독의 경우엔 리그 전체를 자극하는 말은 되도록 삼갔으며 선수 개인에 대한 발언, 특히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하는 것은 금기로 여겼다. 그 대신 기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접근, 한 두 언론에서 기사가 나감으로써 그것을 전체적으로 공론화 시키기보다는 선수 개인에 대한 경고 내지는 각성을 일깨우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했다.
당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필자는 히딩크의 이런 모습을 고종수 사건을 통해 잘 인식하게 됐다.고종수에 대해 말을 아끼던 히딩크 감독은 경기를 마치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도중 필자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고종수는 저런식으로 뛰면 별로 가능성이 없어”라는 등 당시 ‘게으른 천재’로 소문나있던 고종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때 필자는 마치 옆구리를 푹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고종수에 대한 내 생각이 이러니 내일 아침에 크게 (신문에) 써’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는 의견 전달이었다.기사는 다음날 곧바로 기사화 되었고 선수 개인을 폄하하는 내용이었지만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언론의 특성은 한 언론사에서 특종이나 독점적인 내용을 보도하면 다른 언론사는 그것을 잘 따라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히딩크는 이런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고 생각된다.
이에 비해 베어벡 감독은 전 언론사가 운집한 프레스 룸에서 한 선수에 대해 ‘테러블(Terrible)’이란 단어를 사용, 소속팀 감독과 선수, 더 나아가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에게 공적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시원치 않은 경기로 - 아시안컵에 대비한 테스트 개념도 별로 눈에 띄지 않은데다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고 0-2 패배를 당한 시점에서.
많은 축구 지도자들은 ‘베어벡 감독이 그릇이 적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도 그런 그의 모습을 노정한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베어벡 감독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감독보다는 더 많은 축구인들을 객관적으로 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런 메리트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3회 연속 한국 축구의 왕좌를 장기집권하고 있는 더치맨들. 물론 이전 두 명의 감독보다 경험이나 연륜면에서 모자란 점은 분명히 있지만 베어벡 감독의 언론 활용이나 여론 조작은 좀더 치밀한 계산이나 계획이 필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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