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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N)'천년학', 임권택 감독이 젊은 관객에 주는 선물

유숙 기자I 2007.04.05 15:50:32
▲ 남도의 풍광을 한 폭의 동양화처럼 스크린에 담은 '천년학'

[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한국 영화계의 큰 어른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제작 키노2)이 최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임 감독이 14년 전 ‘서편제’에서 소리로 한(恨)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번 '천년학'은 같은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소리에 담긴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천년학'은 투자 문제로 제작이 한때 중단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렵사리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일부에서는 ‘100번째 연출작이라는 부담감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사회에서 만난 '천년학'은 순탄치 않았던 제작과정의 고충과 일부의 혹시나 하는 우려를 모두 잊게 만들었다.

평생을 영화와 함께한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천년학’은 유려하고 은근한 호흡을 갖고 있고, 관객에게 적절히 보여주고 적절히 감추는 매력을 지녔다.

양아버지에 의해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오정해 분). 둘은 서로에 대해 사랑을 느끼지만 그저 서로를 멀리서 그리워하고 그 사랑을 소리로 승화시킬 뿐이다. 이들은 운명처럼 우연히 마주친 순간에도 자신들의 애틋한 감정을 차마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다.

▲ 절제된 연기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함을 연기한 조재현(왼쪽)과 오정해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동호가 준 반지를 녹슬지 않도록 정성들여 닦는 송화의 손길과 그녀와 살 집을 직접 짓는 동호의 희망 속에 자연스레 묻어난다.

잔잔한 물 위를 날아가는 학,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 등 임권택 감독과 오랜 파트너 정일성 촬영 감독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장면들은 동호와 송화의 소리와 어우러져 과장되지 않은 감동을 전한다.

'천년학'의 은근한 사랑 이야기는 인스턴트식 사랑과 이별 이야기, 폭력이나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들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에게는 심심하고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천년학’은 오히려 임권택 감독이 젊은 관객들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다. 만약 이 노장 감독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이런 영화,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이라는 무거운 수식어를 떼어놓고 봐도 ‘천년학’은 현재 우리 영화계에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천년학'은 4월12일 개봉한다.

▲임권택 "우리만이 지닌 퉁명스러움, 흥스러움, 멋스러움을 '천년학'의 곳곳에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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