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의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다원그룹 이 모 회장이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지난 1990년대부터 철거시장을 접수해 소위 ‘철거왕’이라 불린 이 회장은 2000년대 들면서 수년간 동안 회삿돈과 아파트 허위분양으로 대출받은 돈 등 1000억원 넘게 빼돌린 혐의가 인정돼 2015년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감옥행과 동시에 잊혀졌던 그가 다원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다원이앤씨가 이번 사고에서 철거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철거업과 ‘조폭’ 연루설을 재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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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조폭’?…“다들 꺼리는 일, 부수면 그만”
조직폭력배의 철거시장 장악은 오래 이어져 온 추측이자 사실이다.
‘비열한 거리’ 등 여러 영화에선 조폭들이 철거용역에 나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들이 나온다.
다원이앤씨의 모회사인 다원그룹, 다원그룹의 전신인 적준은 이러한 영화의 현실판으로 꼽힌다. 1990년대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며 폭력철거를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적준에서 일하다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회사명을 바꾼 후 전국의 철거용역사업을 싹쓸이하면서 수백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1월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 6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 현장에도 철거 용역들이 있었고, 이들 역시 적준에서 뻗어나온 조직이란 주장이 당시 나왔다.
폭력배들이 철거 영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평범한 이들은 꺼리는 ‘험한 일’이란 점을 업계에서는 꼽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과정에서 보상을 더 받으려 ‘알박기’를 하거나 생존권을 주장하면서 퇴거 않는 주민을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며 “본인들 손에 피 묻히지 않으려는 조합과 시행사가 폭력 행사를 개의치 않는 조폭에 돈을 더 주고 일을 맡긴 것”이라고 했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치 않았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엔 주로 단층 건물들이 철거 대상이었고, 철거 과정에서 석면 등과 같은 유해물질에 대한 특별한 조치도 없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엔 소위 무식하게 때려부숴도 됐다”며 “건설과 달리 애프터서비스(AS)가 필요 없는 영역이다보니 그 다음을 고민할 필요 없는 단순작업”이라고 했다.
이윤도 상당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광주 사고에선 철거 공사비가 3.3㎡당 최대 28만원에서 4만원까지 줄어들었다는데, 힘으로 눌러 하청을 주고 후려치면 이윤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철거 후엔 고철 등을 쓸어 되팔아 쏠쏠한 부수입을 챙겨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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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사에 철거 떠맡긴 법…“이해 안된다”
현재 철거업계에 있는 이들은 ‘1세대’와는 차이가 난다고들 한다.
용산참사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점잖아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다원이앤씨에서 보듯 뿌리는 부정할 수 없는게 사실이다. 영향력도 여전하다는 얘기가 많다. 이번 사고사업장에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한솔기업과 철거 공사를 맺었고, 이와 별도로 학동4구역조합은 석면 해체 공사만 다원이앤씨에 발주했다. 그런데 한솔기업과 다원이앤씨는 약속한 듯이 실제 철거 공사를 진행한 백솔건설에 재하도급을 주고, 백솔건설은 다시 재하도급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폭 후예’ 기업의 관여 속에 불법적인 ‘하청의 재하청’이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법 개정으로 철거까지 떠맡게 된 건설업계에서도 불만은 이어지고 있다.
기존엔 조합이 자체 발주했던 철거사업이 2017년 이후 시공사와의 공사 계약에 함께 묶이도록 도시및주거환경기본법이 개정됐다. 유해물질인 석면에 대한 조사·해체·제거를 포함한 철거공사도 모두 시공사와의 공사 계약에 포함됐다. 조합과의 유착 등 비위를 막기 위해 철거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 등의 책임 전반을 시공사에 넘긴 조치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 사고가 난 학동4구역은 관련 법이 시행되기 전에 HDC현산에서 시공사로 선정돼 조합은 다원이앤씨에 석면 해체를 따로 발주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은 건물 등을 새로 짓고 세우는 일인데 철거가 시공사인 건설사의 책임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조폭이 연루돼 있단 얘길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철거 일을 맡고 싶지 않았고, 법이 바뀌었어도 우리 일이란 인식이 없었다”고 했다.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말들도 나왔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파리 꼬이듯 폭력배들이 철거에 꼬이고 폭력배들끼리 영역다툼을 해대서 시공사도 개입하지 못하고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철거업체가 어떻게 일을 하든 ‘아서라, 냅둬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학동4구역 붕괴사고로 철거-조폭 연루설이 다시 조명받고 있지만 개선 방향엔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적준에서 파생된 회사들이 지금 대부분의 철거업체이고 다원이앤씨는 그 중 적자라 할 수 있다”며 “시대가 바뀌면서 하나의 업역으로 자리 잡고 양성화됐지만 철거는 원래 건설 아닌 깡패영역이었고 잔재도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