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의 ‘고용창출형 임금피크제’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민간까지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다. 일정 연령까지 고용을 보장·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깎은 뒤 절감한 임금을 신입직원 채용 등에 사용한다는 게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권고안의 골자다.
한국남부발전은 지난 22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했다. 정부 권고안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통틀어서 남부발전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틀 뒤인 24일 한국서부발전이 공공기관 중에서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다만 ‘노사합의에 따른’이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27일엔 전력거래소가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처음’이라면서 ‘최초 도입’을 강조했다.
남부발전과 서부발전이 서로 임금피크제를 ‘최초’로 도입했다고 주장하더니 전력거래소까지 동참한 것이다. 그나마 남부발전은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점에서 ‘최초’를 주장할만 하다.
서부발전과 전력거래소는 다르다. 뒤늦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굳이 ‘최초’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다분히 의도가 있어 보인다. 노사 간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상급기관에 실적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학습효과’도 홍보경쟁을 부추겼다. 지난 해 부채감축 및 방만경영 해소 등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추진 당시 지역난방공사와 동서발전이 우수기관으로 뽑혔다. ‘최초’ 타이틀을 따낸 것이 향후 경영평가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정부가 청년일자리 확대 등 노동개혁에 워낙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엔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 하다.
서부발전이 ‘노사합의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한 날 남동발전도 직원투표를 거쳐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정했다. 그러나 보도자료 배포를 취소했다. 지난 해 공공기관 정상화로 이미 충분히 지친 직원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임금을 깎았다”고 자랑하고 싶지 않아서다.
상급기관에 “우리 시킨대로 잘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식의 홍보·실적 경쟁은 청년고용을 확대하고 장년고용을 안정시키자던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