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갈수록 꼬이네..주요정책 혼선 가중

좌동욱 기자I 2008.02.04 17:14:43

통신비 인하, 시장 매커니즘 무시한 정책 입안..업계로 떠넘겨
규제완화 법개정은 하반기..효과도 내년에나
영어공교육은 총선 표심에 부정적..한나라당 "인수위 과욕 문제" 지적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에 참석, 작심하고 쓴소리를 했다. "여론을 의식해서 한건 발표한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면서 공무원의 탁상행정을 답습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핵심공약인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타임 스케줄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상반기 하반기 이런 식의 계획이 아니라, 월별 계획도 첫주 둘째주 셋째주로, 첫주는 무슨 무슨 요일 단위까지 세우라'고 질책했다.

하지만 지난 보름동안 인수위의 활동은 당선자의 주문과는 딴판으로 움직였다. 정책 실행 권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욕을 앞세운 정책들을 발표했다가 이를 백지화하거나 여론에 밀려 당초 방침에서 한발씩 후퇴하는 정책들이 늘고 있다.

통신비 인하는 업계로 떠넘겼고, 구체적인 방안은 새 정부가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개괄적인 내용이나 타임 스케줄은 내놓지 못했다. 영어 공교육도 의욕이 앞섰다가 여론의 질타는 물론 예비여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도 총선 표 깎아먹는 정책으로 수모를 당한 케이스. 이같은 '혼선'들이 시장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면서, 새 정부의 '신뢰'마저 갉아먹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미국 경기침체, 고유가 등으로 대외경제 여건이 갈수록 불안해지는 상황인데도 올해 성장률 목표는 6%를 고수하고 있다. 성장 의지를 다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거시운용의 기본이 되는 지표를 현실화시켜 현실 정책입안과 운용에서 시각차를 줄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목표를 고수함으로써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비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조차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속의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인수위는 규제완화와 투자활성화가 이뤄지면 가능하다며 현실과 괴리감을 넓히고 있다.

◇ 휴대전화 요금 20% 인하..사실상 포기?

선거 당시 내걸었던 선거 공약을 철회하거나, 인수위 정책 입안 과정에서 비판에 부닥쳐 오락가락하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새 정부 출범 전에 휴대전화비 20% 인하를 추진하겠다는 인수위 약속은 사실상 업계로 떠넘겨버렸다. 함께 내놨던 유류세 인하도 약속시한을 넘긴채 새정부 출범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동관 대변인은 인수위 출범 직후인 지난해 말 "정권 출범 전이라도 현 정권과 논의해 추진할 것은 즉각 실행에 옮길 것"이라며 "가급적 유류세 10% 인하와 휴대전화비 인하부터 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대변인은 지난 3일 "구체적 방안 발표는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할 것"이라고 입장을 철회했다. 앞서 인수위는 통신비 20% 인하안을 지난달 밝히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통신업계가 민간시장으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인수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 완화정책도 '혼선'을 보이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직후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데다 선진국에 없는 제도"라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인수위는 사후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방침도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8일 인수위가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당초 인수위는 사전적 규제 완화와 사후 규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사후 규제를 추후에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입장 변화는 이미 차기 정부가 올해 성장률과 같은 단기 성과에 조급해한다는 근거"라고 비판했다.

◇ 규제완화 법개정, 빨라도 하반기..효과는 내년에나

특히 새 정부의 규제 완화 방안은 대부분 법 재·개정 문제와 얽혀있어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4월 총선을 감안하면 이런 법 재·개정 문제는 빨라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주택 거래세와 유류세 인하(LPG 특소세 면제)와 같이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법 개정안들도 2월 국회 처리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공언을 무색하게 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는 "설사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살아난다고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규제 완화를 위한 법개정은 하반기이후 가능할 것"이라며 "이로 인한 가시적은 효과는 올해 연말이나 나타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도 "인수위, 과욕 자제해야"

이런 '혼선'은 비단 경제 분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도 인수위가 여러차례 입장을 번복하면서, 사교육 시장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관련기사 ◀ ☞ '교육개혁, 조령모개는 곤란하다'

전 국민이 '이해관계자'라는 국민연금 개혁안은 아예 새 정부 출범 후 검토하겠다며 한발 후퇴했다. 당초 인수위는 지난달까지 4대 공적연금 개혁 로드맵을 발표한다고 밝혔었다. 양도세 등 부동산 세제와 대운하 사업도 집값상승 등 각종 이유를 들어 속도가 늦춰진 경우들. 인수위가 손을 댄 정책들이 이처럼 우왕좌왕하면서 시장과 업계에서는 정책혼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도 여야를 불문하고 인수위에 대한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이날 당 최고 위원회의에서 "인수위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며 "영어 공교육 강화, 통신요금 인하와 같은 것은 새로 취임한 부처 장관이 점검, 협의해 발표해야 될 것인데 인수위에서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보니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당선자 역시 지난 2일 일부 참모들과 회의를 갖고 인수위 활동에 대한 문제점과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6% 성장목표는 대내외 경제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채 당초 공약에 집착하는 사례로 꼽힌다. 김상조 교수는 "국내외 경제변수가 작년보다 모두 악화됐다"며 "6% 성장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고 말했다.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역시 "6% 성장 공약은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