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의 연설을 들으려는 의원들로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다른 나라의 모습과 달리 곳곳이 텅텅 비었으며 기립박수 역시 없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화상연설 시청 장소의 5분의 1가량도 못 채우는 저조한 참석률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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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회도서관 대강당은 전체 의원 300명 중 약 60명만 참석해 좌석 300석의 상당수가 비는 등 썰렁한 분위기였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 등 국회의장단은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의장단은 국회를 방문한 스웨덴 국회의장과 면담 뒤 의장실에서 함께 연설을 시청했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으나 미국 영국 일본 등 23개국 의회 화상 연설 때마다 어김없이 터져 나온 기립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 연설 때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의원들이 의회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영국 의회는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하원 회의장을 내줬고 보리스 존슨 총리도 참석했다. 일본 의회 연설 때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외상, 방위상 등과 함께 참석했고 빈자리가 없어 일부 참석자는 서서 연설을 들었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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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대해 “이 전쟁을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라 10년 넘게 준비해 왔다. 10년 이상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준비한 전쟁”이라며 “석유와 가스 수출로 받은 수천억달러의 자금은 무기 생산과 축적에 사용됐고, 러시아는 수많은 미사일을 우크라이나를 향해 쏘아 올렸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략 야욕은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만 점령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다른 국가도 분명히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든 나라가 독립을 가질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들은 전쟁으로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와 함께 서서 러시아에 맞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인도적 지원과 의료품, 전투식량, 방탄헬멧 등 군수물자 지원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소련 때부터 강대한 군대를 갖고 있다. 우리가 러시아와 전쟁에서 이기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다. 한국에 러시아의 전차, 전함,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군사장비가 있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이런 무기를 받게 되면 일반 국민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고, 다른 국가들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서욱 국방부 장관과 통화에서 대공무기체계 등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상용 무기체계 지원은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날 우리 국방부는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대공 무기 지원 요청을 거절한 사실을 밝혔다. 현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탄헬멧·텐트·의약품 등 비살상 군수 물자만 지원하고 있다.
또한 연설이 끝날 무렵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마리오폴 시의 영상을 상영했다. 초토화된 도시와 죽은 아이의 시신 앞에서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영상이 끝난 뒤에도 장내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짓은 바로 러시아의 짓이다”며 “여러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원해주시기를 요청한다”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지원을 요청할 때는 이날 16분간 통역을 진행한 동시통역사도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