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언론을 못믿겠다

정명수 기자I 2005.01.17 16:25:35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미국에서도 언론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국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언론마저 제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입니다. 언론은 냉철한 시선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두루두루 살필 줄 알아야합니다.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니,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의욕도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명수 뉴욕특파원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지 안타깝다고 합니다. 미국 CBS 방송이 부시 대통령의 `병역 특혜` 오보와 관련, 4명을 해고했습니다. 이 뉴스를 보면서 갑자기 얼마전에 봤던 `화씨911`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습니다. `화씨911`이 아니라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화씨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은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부시 낙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화씨911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용 중에 영화배우 팀 로빈스가 아주 충격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미국) 미디어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화씨911이 진실이다. CBS도 ABC도 NBC도 CNN도 FOX도 믿지 않는다" 저는 화씨911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길래 팀 로빈스가 유수의 미국 언론사를 믿지 않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CBS 등에 근무하는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기사를 쓴다는 측면에서 팀 로빈스가 나한테 욕을 한 것 같아서 아주 찜찜했습니다. 물론 로빈스는 미국 언론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이고, 아마도 그 양반은 제가 쓴 기사를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겠죠. 다행스럽게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자, 언론을 보는 시선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기자들한테 가장 큰 욕이 무엇이겠습니까. "네 기사를 믿지 않는다"는 거죠. 기자의 존재 이유가 `사실`인데 "네 기사는 사실도 진실도 아니다"라고 하면 존재의 근거가 없어지는 거니까. CBS의 오보는 역설적입니다. 부시한테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병역 특혜 보도였는데, 거짓으로 판명났습니다. CBS 뉴스를 20년 이상 이끌어온 간판 앵커 단 레더도 이때문에 옷을 벗게 됐죠. 레더는 이라크 전쟁 직전에 후세인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CBS는 오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였고, 관련자를 모두 해임했습니다. "보도의 생명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달고서요. 재밌죠. 진보적인 미국의 지식인들은 CBS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CBS는 신뢰 회복을 위해 유명 앵커와 프로듀서의 목을 쳤습니다. `누구에 대한 신뢰`인지 헷갈립니다만. 그러고 보니 곧 부시의 취임식이 있습니다. CBS가 부시에게 취임식 선물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한 방송 기자의 `고백` 때문에 시끄러운 모양입니다. 이 기자의 고백 중에 "자본의 논리...."이런 대목이 나오더군요. 언론이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와야한다는 아주 참신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 언론이 지금보다 몇천배 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해야 제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논리가 뭔가요? 돈의 논리죠.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되면 안한다. 돈 값에 충실하자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상품(기사)은 돈이 된다는 거죠. 믿지 못할 상품, 가치없는 상품을 억지로 사라고 강요하는게 오히려 이상한 겁니다. 우리 언론들도 한 때(?) 말도 안되는 기사를 써서 빈축을 샀습니다. 이런 기사들은 솔직히 돈이 아깝죠.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자의 값, 언론의 값이 하한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돈이 아깝다는 거죠. "이런 기사를 돈 주고 보다니 돈이 아깝다" 이런 비판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기자가 생산하는 기사의 핵심은 사실, 진실, 정보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게 충족 안되니까 돈이 아깝고, 그러니까 안본다. 그래서 진실을 얘기하는 화씨911 같은 영화를 보겠다. 화씨911은 돈 값을 하니까. 화씨911이 다큐멘터리로는 이상하게도 높은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게 자본의 논리입니다. 상품이 제대로 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보고, 마이클 무어는 돈을 버는 겁니다. 대학 시절에 `강철 군화`라는 소설이 유행했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을 다룬 소설입니다.(그러고 보니 저는 이 책도 읽지 않았네요.) 이 소설을 쓴 잭 런던이라는 양반은 좌파 성향의 작가였는데 이런 노동자 소설로 돈방석에 앉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너무 돈을 많이 벌어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이 노동자들한테 너무 인기가 좋아서 돈을 많이 벌게되니까 고민을 한 거죠.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어도 되나..." 이건 자본주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좋은 상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그 댓가로 큰 돈을 벌었다면 고민할 일이 아니죠. 오히려 더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래서 기자들도 마누라한테 명품 핸드백도 사주고, 강남 아파트도 사고, 비싼 양주도 마시고.. 상품을 사는 사람은 돈 값이 아깝지 않고, 상품을 만드는 사람은 돈 많이 벌어서 좋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다시 더 좋은 상품이 나오고. 선순환이 이뤄지는 겁니다. 제품은 형편없이 만들면서 제대로 값을 쳐주지 않는다고 조질 생각이나 하면 그것도 반 자본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발상을 한다면 진짜 상품다운 상품, 기사다운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할 겁니다. "만국의 기자들이여 단결하라! 너희들이 잃을 것은 카드값 걱정이요, 너희들이 얻을 것은 명품 핸드백이다. 자본주의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저도 당장 자본주의 정신으로 재무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이 돈이 아깝다. 이걸 기사라고 썼냐" 이런 소리 듣지 않도록.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