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에 석유·화학, 2050년 주가 반토막…한은 "은행, 익스포저 줄여라"

최정희 기자I 2021.12.30 12:00:00

한은, 조사통계월보 '기후변화 이행리스크와 금융안정' 발간
2050년까지 지구 온도 1.5도만 높이려면…온실가스 저감비용 톤당 83만원까지 상승
고탄소 산업 부도율 30년간 18.8%P 커지고…주가는 53.7% 급락
은행 금융자산 17%는 고탄소 산업…산업은행 등은 BIS비율 7.3%까지 추락 우려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저탄소 정책 가속화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유화학, 철강 등 고탄소 산업의 생산비용이 급증해 2050년엔 이들 업종의 부도율이 뛰고 주가는 반토막날 것이란 한국은행의 전망이 나왔다.

이는 즉각적으로 은행 부실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행 금융자산의 17%가 고탄소 산업의 주식, 채권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 가격 급락에 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급락할 것이란 우려다. 특수은행의 경우 BIS비율이 규제 수준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에 한은은 은행이 고탄소 산업의 주식, 채권 등 관련 투자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에선 고탄소 산업이나 은행들이 받을 타격을 고려해 저탄소 정책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출처: 한국은행)
◇ 고탄소 산업, 부도율 30년 후엔 18.8%포인트 더 커진다

한은이 30일 발간한 조사통계월보 ‘기후변화 이행리스크와 금융안정’에 따르면 205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90년) 대비 1.5~2.0도로 제한한다고 가정해 분석한 결과 석유화학, 정유, 철강, 선박, 석탄발전, 시멘트 등 9개 고탄소 산업(부가가치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업종)의 생산비용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부가가치가 급감하고 부도율이 껑충 뛰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작년 6억7000만톤에서 2050년 2억톤으로 약 70% 감축해 2050년까지 지구 온도가 2도만 상승한다고 가정할 경우 고탄소 산업의 부가가치는 28.5%(연 평균 0.95%)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탄소 정책에 더 드라이브를 걸어 지구 온도를 1.5도만 높이겠다고 가정하면 고탄소 산업의 부가가치는 무려 73.1%(2.44%)나 급감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 감축키로 했는데 이를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고탄소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한도를 축소시키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려면 이에 따른 비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책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은 분석 결과 ‘2도 시나리오’에선 경제주체들의 온실가스 저감비용이 2050년말 톤당 30만7000원까지 상승하는 반면 ‘1.5도 시나리오’에선 그 비용이 톤당 83만원까지 상승, 두 배 이상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고탄소 산업들의 생산 비용 증가는 부도율을 끌어올려 신용 위험을 키우고 주가를 큰 폭으로 떨어뜨릴 것으로 예측됐다. 고탄소 기업의 부도율은 2050년에 2020년 대비 10.2%포인트~18.8%포인트(연평균 0.34%포인트~0.63%포인트)나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고탄소 산업의 주가 역시 30년간 51.0~53.7%(1.7~1.8%)나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고탄소 산업 중에서도 업종별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기, 가스 등 전기공급업의 경우 화석연료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덜 들어갈 수 있는 반면 석유화학 등 제조업은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개발, 상용화되지 않아 생산 비용 증가를 고스란히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출처: 한국은행)
◇ ‘고탄소 산업’ 투자 비중 높은 은행도 비상

저탄소 정책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탄소 산업의 부실화 우려는 즉각적으로 은행으로 번질 전망이다.

국내은행의 고탄소 산업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 익스포저는 작년말 240조원으로 전체 금융자산(1456조원)의 16.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이 29%(2018년)로 일본(21%), 미국(12%), 프랑스(11%) 등보다 높아 은행의 고탄소 산업 익스포저 비중도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은행의 고탄소 산업 익스포저 비중은 9.7%에 불과했다. 실물경제에서 고탄소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9.7%에 달했다. 77개 업종 중 9개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육박하는 것이다.

한은은 2050년엔 고탄소 산업의 부실화로 국내 은행의 BIS비율이 작년 대비 2.6~5.8%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1.5도 시나리오’에선 BIS비율이 10.7%로 규제비율(10%) 수준까지 떨어진다. 특히 산업은행 등 특수은행은 고탄소 산업의 익스포저 비중이 20.6%에 달해 BIS비율이 7.3%로 추락, 규제비율도 밑돌게 된다. 뱅크런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재윤 한은 금융안정연구팀 과장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개발, 상용화되지 않을 경우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은행들이 현재 수준의 기후변화 대응만 지속할 경우 이행리스크에 취약한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하며 큰 폭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ESG투자 활성화를 통해 (저탄소) 이행에 취약한 자산 보유액을 선제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저탄소 정책을 추진하되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속도조절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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