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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소설]'파월의 입'에서 비둘기가 나와야 하는 이유

고준혁 기자I 2022.02.10 11:22:36

데이터 보고 움직인다는 연준, 1월 CPI 7% 전망
폴 크루그먼 "내구재 불균형적 수요 폭증이 인플레로"
저축률 감소 및 성장 둔화 등에 인플레 하락 전망
"파월 2018년 경기 안 좋은데 긴축 고집…반복 가능성"
스티글리츠 "금리 인상 저소득층 삶 망칠 수도"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험블 앤드 님블(humble and nimble·겸손하고 기민하게)”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멋있는 말 같지만, 꼭 그렇다고만 볼 순 없습니다. 그때그때 나오는 데이터를 보고 빠르게 반응하겠단 얘긴데, 아무리 빨라도 골똘히 예측해서 미리 대응하는 것보단 느리기 때문입니다. 이은택 KB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얼핏 보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데, 마치 주식에서 실적발표를 확인하고 매도, 매수를 결정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 없이 행동하겠다는데, 불안하지 않을 시장 참가자는 없습니다. 당장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가 있습니다. 아래든 위든 시장이 또 한 번 크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재임 이후 완벽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변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번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올해야말로 진짜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가 예상되는데,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고집하다간 미국 경기를 꺾어놓을 수 있어서입니다. 침체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풋옵션에서 착안한 용어인 ‘파월 풋’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사운드클라우드)
3월 50bp 인상만 안 해도 ‘파월 풋’

3월 FOMC에서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첫 정책금리 인상 발표가 있을 거란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입니다. 8일 기준 CME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3월 기준금리가 25bp(1bp=0.01%) 이상이 될 확률을 75%로 보고 있습니다. 50bp 이상 확률은 25%입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각각 95.4%, 4.6%였던 게 급변했습니다. 한 번에 50bp를 올릴 가능성을 갈수록 크게 보고 있단 얘깁니다. 유로달러 선물 시장은 올해 말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50bp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25bp씩 인상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총 6회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하는 겁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서 반영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 시점의 정책금리 확률. (출처=CME)
이처럼 시장이 금리 인상이란 매를 맞기도 전에 대비를 해놓은 탓에, 파월 풋의 기준도 내려갔습니다. 3월 FOMC 회의 때 기준금리 25bp 인상에다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조금이라더 비둘기적인(dovish) 입장을 보이면 파월 풋이란 얘기가 나올 수 있단 겁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기민하게 행동하겠다고 한 연준을 비춰 볼 때, 지금으로서는 이럴 가능성이 작아 보입니다. 전문가들의 미국 1월 CPI 예상치는 전월 대비 0.4% 상승, 전년 동기 대비 7.2%입니다. 40년 만의 최대 인플레이션으로, 이를 겸손하게 바라보는 연준이 기민하게 금리를 50bp 올리겠다고 대응할지 모를 일입니다.

2022년이야 말로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

당장 1월은 인플레가 높더라도, 전문가들은 올봄을 기점으로 인플레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플레의 본질은 코로나19 봉쇄정책으로 인한 공급 측면의 문제가 아니라, 급격히 늘어나게 된 수요 탓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의 해석을 인용한 이종빈 메리츠증권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재화와 서비스 수요의 괴리가 발생했고, 내구재 수요의 불균형적인 성장이 일부 내구재의 공급 여력을 넘어선 것이지 충격에 의한 생산 여력의 감소로 볼 수 없다”며 “즉 최근의 물가상승은 주요 쏠림의 영향이며 생산 여력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란 의미”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요 불균형에 주목한다면 공급망 병목 해소를 가늠할 변수는 소비 비중 변화다”라고 지목했습니다.
지난 2일 미국 상무부는 개인의 상품(goods) 지출은 2개월 연속 감소한 반면 서비스 지출은 같은 기간 소폭 증가했다고 전했습니다. 네이비 연방신용조합의 로버트 프릭 기업 경제학자는 “오미크론 파동이 계속 감소하고 후속타가 없다면,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재화와 서비스 간의 비정상적인 지출 비중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서비스 상품에 대한 접근이 막히면서 재화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면, 이제 서비스에 돈을 쓰느라 재화를 덜 구입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공급 병목은 해결되고 인플레는 낮아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재난지원금(stimulus check) 등의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소비 자체가 줄 거란 의견도 있습니다. 2020년 4월 33.8%까지 상승했던 미국의 저축률은 지난해 12월 7.9%까지 낮아졌습니다.
미국 개인 저축률 추이. (출처=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어느 정도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인플레를 조정할 것으로도 보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위축되고 기업들은 가격 인상을 자제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실제로 기업 재고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 기업들의 가격 인상 계획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1월 NFIB 소기업낙관지수를 보면 지난 3개월간 그전 3개월에 비해 판매가격과 임금을 인상했단 응답 비율은 더 높아졌지만, 향후 3개월 내 판매가격과 임금을 올리겠단 응답 비율은 2개월 연속 소폭 하락했다”며 “재고 관련 문항에서도 향후 재고를 확충하겠단 응답은 매우 낮았는데, 인플레가 수요를 약화하면서 재고를 쌓고 가격을 올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이같은 이유에서 2022년이야말로 일시적 인플레를 볼 것이란 전문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메간 그린 하버드대 케네디 정부 대학원의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올해는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팀(Team Transitory)의 멤버에 합류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린 연구원도 미국인의 저축률이 감소하고 미국 정부 재정의 삭감으로 올해 미국 GDP가 쪼그라들며 경기 둔화에 접어드는 등 수요의 감소를 짚었습니다.

시장도 ‘알아서’ 인플레 우려 선반영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물가연동국채(TIPS) 상장지수펀드(ETF)을 자금 흐름을 보면, 이미 지난 1월 중순부터 유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플레 헷지용인 TIPS를 더 이상 사놓을 필요가 없단 투자자들이 더 많은 상황으로 변한 것입니다.

냇알리안스 증권의 앤디 브레너 국제 채권 책임자는 “연준이 인플레가 일시적이라고 하는데 시간을 쓰면서 물가를 잡을 시기를 놓친 게 맞다”며 “다만 이는 2021년의 시나리오로 2022년엔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셰어즈 물가연동국채 상장지수펀드(iShares TIPS Bond ETF) 자금 유출입 추이. (출처=이티에프닷컴)
“금리 큰 폭 인상, 노동 생산성 꺾는다”

이처럼 경제학자와 시장이 올해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파월이 오는 3월 FOMC에서 1월 미국 물가만 보고 50bp 금리를 올려버린다면 자칫 스텝이 꼬이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겸손과 기민보단 인플레 추이를 내다보고 욕 먹더라도 추진할 뚝심과 장기적인 안목입니다.

당장 너무 강한 긴축을 시행할 경우 미국 경기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를 새겨 들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ISM 제조업 지수 등 선행지수가 하락하는 경기 둔화 구간인데, 이때 긴축을 추진하면 잘 돌아가던 경제를 얼어붙게 할 수 있습니다. 파월은 2018년 이같은 실수를 저지른 바 있습니다.
미국 ISM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 추이. (출처=와이차트)
이은택 스트래티지스트는 “2018년 4분기는 이미 경기둔화의 시그널이 완연했다”며 “즉 후행지표인 물가와 고용이 안정화된다는 게 명확해진 상황이었지만 파월은 ‘여전히 중립금리까지 한참 남았다’는 발언으로 4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 증시는 급락하고 경기를 반영하는 장기금리는 연준 긴축에도 불구 급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후행적 통화정책은 경기 확장 사이클을 단명하게 만든다”며 “파월이 인플레를 억제하려고 긴축을 (시장 예상보다) 강하게 한다면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는 급격히 축소될 것이며 이는 경기와 증시에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정규직(16세 이상) 실질임금 중앙값 추이. (출처=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교수는 “금리가 큰 폭 오르는 것은 질병 자체보다도 아주 나쁜 치료법”이라며 파월을 겨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민감하게 반응한 건, 미국의 저소득층이 수년간 없었던 실질임금 상승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금리 인상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플레를 잡겠지만 “사람들의 삶도 망친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또 금리 인상으로 경기를 침체시켜 임금을 깎는 방식은 노동자들을 화나게 만들어 생산성을 낮춘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떨어져 이제 곧 돌아올 노동자들이 돌아와 임금 인상 압력은 낮아질 텐데 미리 조치를 취하면 역효과만 부른다는 것입니다. 낮은 생산성은 결국 기업 입장에서 비용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제품 가격 인상, 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출처=인베스팅닷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3일 통화정책회의 직후 “우리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최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 뒤,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치솟자 다시 “인플레가 중기적으로 우리 목표치를 크게 웃돌 것이란 신호는 없다”며 태도를 전향했습니다. 시장과 긴밀히 소통한 것입니다. 유럽은 지난 2011년 너무 급하게 금리를 올리다 그리스 등 일부 국가들이 부채 위기를 맞아 경기 침체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를 잡으려다 경제를 망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것으로 풀이됩니다. 파월 의장이 긴축으로 경제를 망친 것은 2018년으로 유럽의 경우보단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부디 그가 4년 전 일을 잘 기억하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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