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3일자 36면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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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서윤 기자] 술상 앞에서 두런 두런 담소를 나누는 이들은 이웃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출판사 직원, 가정주부, 대기업 사원 등 직업도 다양한 이들은 얼핏 보면 그저 친목모임에 참석한 듯 하다. 하지만 실은 과격혁명을 모의 중이다.
그런데 어째 순탄치 않아 보인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주부의 장광설이나 취객의 방해, 신문보급소 직원의 방문 등으로 테러 계획은 중단되기 일쑤다. 방해를 피해 흩어졌다 모이면서 계속되는 조직원들의 논의는 재즈밴드나 자녀의 아토피, 연애담 같은 일상사로 흐르면서 삼천포로 빠져든다. 혁명 논의 중에 일상인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테러 작당을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상과 현실을 오가는 현대인들을 반추해보게 하면서 웃음을 선사한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작가 히라타 오리자가 극본과 연출을 맡아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유쾌함과 해학이 돋보인다. 도시 근교 주택가에 모여든 이들이 모임을 위장해 과격혁명을 모의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소한 일상 속에서 ‘혁명’이란 과업을 앞둔 사람들의 갈등을 그렸다. 투쟁노선을 놓고 격렬한 언쟁이 오가기도 하고 남녀 조직원 간 연애관계가 드러나기도 하면서 집단논리와 개인일상 사이의 문제가 유머러스하게 포착됐다.
카이즈 타다시, 나카무라 미오, 사야마 이즈미 등 일본 배우들이 직접 연기해 자막을 통해 대사가 전달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일본어 연극이 주는 색다른 아기자기함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