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의 한 장면. 주인공 나나(이요셉 분), 누누(오찬혁 분)가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연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차용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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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고래는 그동안 연극 ‘빨간시’, ‘비명자들’ 시리즈 등을 통해 위안부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무대 위에 올려왔다. 신작 ‘굴뚝을 기다리며’는 노동운동의 현실을 부조리극 형식에 담아 선보인다. 극단 고래의 공동대표 겸 상임연출가 이해성이 2019년 파인텍 고공농성 현장을 노동자들과 함께 지켰던 경험을 바탕으로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노동 이야기를 다룬 연극은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인 극 형태가 많았다. 반면 ‘굴뚝을 기다리며’는 이를 부조리극의 형태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개막 전 전막시연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해성 연출은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예술로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자들과 연대활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이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와 닿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노동운동 자체는 정치와 언론의 프레임에 갇혀 많은 이들의 외면을 받고 있죠. 어떻게 하면 노동문제를 거부감 없이 사유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차용해 노동자 문제를 다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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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와 누누가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365개의 굴뚝을 청소해야 하는 청소(박현민 분), 인공지능 로봇 미소(김재환 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이소(윤새얀 분)다. 각각 일상 속 노동, 기계로 대체되는 인간 노동 문제, 현재 청년 세대의 노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소가 나나와 누누를 향해 던지는질문은 요즘 한국사회의 화두인 세대 문제를 잘 보여준다. 이해성 연출은 “이소는 혁명과도 같았던 ‘미투’ 운동 이후 그 혁명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완전히 깨거나 운동으로 확장하지 않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노동문제가 처한 현실에 대해 특정한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이해성 연출은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복직만을 위해 농성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들을 굴뚝 위에 올라가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가 이 사회를 어떻게 진보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관객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는 27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