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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3년 11월 바이마르 공화국이 렌텐마르크라는 새 화폐를 발행하고 옛 마르크와 1조 대 1의 비율로 화폐교환을 실시해 겨우 수습한다. 그렇잖아도 프랑스와 민족적 악감정이 있던 독일 내부에서는 프랑스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바이마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여기에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치명타를 날렸다. 대공황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자 유럽 시민들은 앞 다퉈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국가를 불신하던 독일의 상황은 불 보 듯 뻔했다. 결국 1931년 5월 당시 독일의 중앙은행이던 제국은행이 파산했고, 시중 은행들도 연쇄 도산하기 시작했다. 은행이 무너지자 그들에게 자금을 의지해온 기업들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그렇잖아도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독일 정부는 망가진 은행들의 부채를 모두 떠안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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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나치당과 파펜·후겐베르크(국가국민당) 연립내각은 과반수를 확보하고 히틀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결국 히틀러라는 역사적 괴물의 탄생 배경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 간의 금융 및 화폐 갈등과 국가 이기주의가 영향을 미쳤던 셈이다.
임 박사는 합리적인 국민성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인이 왜 나치의 광기에 빠져들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폐 시스템 붕괴가 촉발한 독일 국민의 증오심이 나치 독일을 탄생시켰다”면서 “한 국가의 화폐 시스템은 단순히 돈을 찍어내고 분배하는 것을 넘어 국가 운영과 민심의 안정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나치의 비극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강의를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