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재 기자] 몇 년 전 한 와인 전문가가 쓴 "보졸레 누보 잔치는 끝났다"란 제목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칼럼에서 `보졸레 누보`의 허상과 우리 사회의 지나친 `쏠림`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서 `보졸레 누보`의 역사는 짧지만 굵다.
1996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보졸레 누보는 불과 몇 년도 안돼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 와인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사람은 보졸레 누보의 맹신자로 변했다. 와인을 얼마나 즐길줄 아는지를 판단하는 잣대로까지 여겨졌다.
"올해 보졸레 누보 맛 보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유행한 정도였다. 유럽 문화에 대한 애정 공세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보졸레 누보의 사전 예약은 수십만 병에 달했고 와인수입상은 이날을 위해 호텔을 잡고 축하 파티까지 열었다.
보졸레 누보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만든 하나의 `거품` 이다. 스타벅스 커피가 초기 한국에 들어왔을 때 소위 `된장녀들`의 상징이 된 것처럼 보졸레 누보도 와인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보졸레 누보의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드롬의 시작과 동시 몰락이 예견됐는지 모른다. 와인 애호가들의 저변이 확대되고 질 좋은 와인이 대거 들어오면서 `새로운 와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보졸레 누보는 무수히 수입되는 와인 중 하나일 뿐이다. 프랑스 현지에서 2~3유로(3000~5000원)면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상품이다. 원래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 와인을 나누며 마시던 것에서 유래됐다. 상술에 의해 과대 포장됐던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잠잠하던 보졸레 누보 마케팅이 올해 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프랑스 농식품진흥공사(소펙사)는 올해 보졸레 지역의 기후 조건은 봄부터 매우 뛰어난 일조량과 특히 여름 동안 적었던 강수량으로 인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외쳐대고 있다. 이런 훌륭한 수준의 와인을 생산한 다른 와인 산지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와인 애호가들은 이전에도 그들의 말을 곧이 듣고 `그토록 완벽한` 상품을 경험해봤다. 이 사실을 와인 수입업체들과 유통업체들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햇 포도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지 않고 이토록 떨떠름 한 것은 상술 때문인가, 아니면 이전에 맛 보았던 보졸레 누보가 떠올랐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