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는거야? 전쟁하는거야?"

노컷뉴스 기자I 2006.06.02 18:45:48

실전·전사·전법 등 군사용어 축구장에 난무 … "민족주의 대신 축구 자체로 즐겨야"

[노컷뉴스 제공]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 용어에 전쟁, 군사 용어가 지나치게 많으며, 이것은 축구를 게임 그 자체로 즐기기보다, 애국적 열광으로 대하는 우리나라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축구평론가 정윤수씨는 6월 2일 CBS 라디오 ‘뉴스야 놀자’(진행 : 개그맨 노정렬, 낮 12시5분~ 1시30분)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에서 ‘매치’나 ‘게임’으로 표현하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우리나라는 국가대항전(戰), 예선戰, 16강戰 등 전쟁의 개념을 사용한다”며 “뿐만 아니라 대표 선수들은 ‘전사(戰士)’, 좋은 감독은 ‘명장(名將)’, 4-4-2 포맷을 4-4-2 ‘전법(戰法)’, 강슛은 ‘수비진을 교란시키는 대포알 슛’으로 부를 만큼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 군사 전쟁 용어가 유독 많다”고 밝혔다.

정윤수씨는 “물론 다른 나라도 월드컵 대표 선수들에게 전사라는 말을 쓰고, 감독에게 장군이라는 닉네임을 붙이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언론과 보도 및 경기 공식 중계에서 표준어처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물론 축구 자체가 그 역사적 탄생과 발전 배경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워낙 강했고, 11명이 쉼 없이 뛰는 물리적 특성상 군사 용어로 비유하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 정도 특히 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우리나라가 축구를 게임으로 즐기는 단계까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채, 여전히 축구를 ‘독립운동’처럼 생각하는 국가주의적 열광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는 생활 체육의 기반이 돼야 할 각급 학교 운동장에도 여전히 군사적 지휘 통제를 상징하는 ‘구령장’이 지금도 예외 없이 서 있다”며 “축구 국가대항경기를 애국심과 정권 정당성을 고취시키는 군사 정권의 통치 방편으로 사용한 지난 역사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처럼 프로리그나 생활 체육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처럼 국가대항경기에서만 놀랄만한 열광을 보이는 기현상이, 우리나라의 월드컵 축구 용어 문화에도 반영이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하지만 지금의 용어들을 어색하게 대체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들 용어가 갖고 있는 다이나믹한 느낌의 장점만 수용하고, 우리 축구 전쟁 용어 문화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걸러내는 식으로 용어를 재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해외 축구 스타들의 특징은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라며 “우리 선수들도 국가적 애국적 비장함이 주는 부담과 정신력보다는 재밌어 즐기는 게임으로서의 축구를 하는 것이 진정한 축구 발전의 길이고, 관중들 역시 그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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