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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종길)는 지난 2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3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무실 안의 직원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가로 7.4m, 세로 6.4m의 사무실 규모와 피해자가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대화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피고인은 해당 대화의 참여자로 충분히 예상된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재판의 배심원 7명도 모두 무죄로 평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씨는 평소 직장상사인 김모씨의 잦은 욕설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 김씨는 2021년 12월에도 경북 울진군의 한 사무실에서 부하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욕설했고, 같은 사무실에 있던 이씨는 이 내용을 녹음해 인사팀에 신고했다. 그러자 김씨는 이씨가 불법 녹음을 했다며 회사에 이씨를 고발하도록 했고,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하거나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지난 1월 11일 대법원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는 일반 공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인지는 객관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자신이 없는 장소에 녹음기를 놓아두고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인정된다. 합법적으로 녹음한 음성이어도 이 내용을 신고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개하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수 있다.
권두섭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추진위원)는 “직장 내 괴롭힘은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가해자는 그 조직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피해자는 목격자인 동료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증거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녹취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피해자가 자리에 있는데도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험담이나 모욕적인 말을 할 때 피해자가 이를 녹취하는 경우가 있다”며 “위 판결은 이런 증거 수집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