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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ARD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의 기독민주당(기민당·CDU)-기독사회당(기사당·CSU) 연합은 32.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2013년 총선과 비교하면 10% 포인트 가량 낮아진 것이다. 기민-기사 연합이 잃은 표는 AfD로 옮겨간 것으로 관측되며 주된 원인은 친(親)이민 정책으로 꼽힌다. 메르켈 총리 역시 출구조사 발표 이후 “대가를 치렀다”며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실제로 반(反)이슬람·반난민 정책을 앞세운 AfD는 13.3%의 예상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총선 때까지만 해도 득표율이 4.7%에 불과했으나 4년 만에 지지율이 3배 가량 급증한 것이다. AfD는 이날 제3정당 자리를 꿰차는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의회 입성을 예고했다. 메르켈 대항마 마르틴 슐츠를 앞세운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SPD)은 역대 최저 수준인 20.2%에 그쳤다.
AfD의 약진은 독일과 유럽의 현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민정책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 그리고 유럽 내 정체성과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반영된 결과”라며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에서 번지고 있는 포퓰리즘에서 독일 역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독일경제연구소 IFO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은 “안보, 이민, 세계화 속에서 독일 경제 모델에 대한 회의 등이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한편 유권자 이탈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총리가 4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독일의 실업률은 3.7%로 사실상 완전고용(3% 미만) 수준을 보였다. 이는 1991년 이래 최저치로 2005년 메르켈 총리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절반 가량 낮아진 수치다.
또 메르켈 총리의 집권 2기 경제성장률은 평균 2%로 같은 기간 유럽연합(EU) 국가들을 크게 웃돌았으며, 작년에도 1.9%를 기록하는 등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경제를 이끈 것은 메르켈 총리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으며, 최근 확대되고 있는 난민·테러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통합 및 EU 개혁, 포퓰리즘 견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과 관련해 기존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한 연정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AfD를 제1야당으로 만들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디르크 슈크 정치학 교수는 “네오파시스트 정당이 독일 의회에 합류하게 됐다는 사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