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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이냐 등기사항증명서냐…1.6억 주인 가른 등기의 추정력[판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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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11.08 12:30:00

■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50)
1.6억 향방 가른 ''2012년 vs 2018년'' 매매 시점
2심, 과도한 담보 등 정황 증거로 2012년 계약 인정
정황보다 앞서는 등기의 추정력, 2심 판결 뒤집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부동산 거래는 큰돈이 오가는 만큼 예상치 못한 분쟁에 휘말리기 쉽다. 특히 지인 간의 복잡한 금전 관계와 부동산 명의 문제가 얽히면, 나중에 법적 다툼으로 비화했을 때 사실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 어렵다.

최근 대법원은 실제 계약이 이루어진 정황과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등기부)에 기재된 날짜가 다를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1억6000만원의 주인을 가른 이 사건을 통해 부동산 거래 시 반드시 유의해야 할 법률 원칙을 짚어본다.

사진=나노바나나
사건의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 A는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기 위해 지인인 피고 B에게 자신의 부동산(이 사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B는 H조합의 조합원 자격으로 I조합에서 B의 명의로 8억원의 대출(이 사건 대출)을 실행했다. B는 이 중 7억원을 A에게 전달했고, 나머지 1억원은 B가 그대로 보유했다.

이후 A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B에게 6032만4152원을 송금했다. B는 A에게서 받은 이 돈(총 1억6000여만원)을 모두 이 사건 대출의 이자를 납부하는 데 사용했다.

문제는 2018년 12월 6일, B가 이 부동산에 대해 2018년 12월 4일 매매를 등기원인으로 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서 불거졌다. A는 “사실 2012년에 이미 10억5000만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고, 8억 대출금은 매매대금의 일부였다. 따라서 2012년부터 부동산의 실소유자는 B였다. B가 보유한 1억원과 내가 추가로 보낸 6000여만원은, B가 자신의 대출 이자를 낼 수 있도록 내가 빌려준 대여금이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B는 “등기사항증명서 기재대로 2018년에 매매가 이루어졌다. 2018년까지 소유자는 A였으므로 8억 대출의 실질적인 채무자도 A다. 내가 받은 1억6000만원은 대여금이 아니라, A가 본인의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나에게 전달한 돈일 뿐이다”라고 맞섰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매매계약이 정확히 언제 체결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1억6000만원의 법적 성격이 이 시점에 따라 빌려준 돈이 될 수도, 대신 내준 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원고 A의 주장대로 2012년에 이미 매매가 이루어졌다면 부동산의 실소유자는 피고 B다. 따라서 8억 대출의 이자도 B가 내야 한다. A가 B에게 보낸 1억6000만원은 남의 빚을 대신 내준 것이므로 빌려준 돈이 된다.

만약 피고 B의 주장대로 2018년에 매매가 이루어졌다면 2018년 전까지 소유자는 원고 A다. B의 이름만 빌렸을 뿐, 대출 이자는 A가 내야 한다. A가 B에게 보낸 1억6000만원은 자신의 이자를 납부한 돈일 뿐, 대여금이 아니다.

결국, 매매계약일이 2012년인지 2018년인지에 따라 1억6000만원의 주인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2심은 A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 증거에 주목했다.

첫째, 경험칙 위반이다. A가 기존 C조합에서 받던 대출 이자율은 연 7.12%였고 , B의 명의로 받은 이 사건 대출 이자율은 약 연 6.8%였다. A가 이자 절감을 위해 이 일을 벌였다고 보기엔, 절감되는 이익(연 144만원) 보다 B에게 준 1억원에 대한 금융비용(연 680만원)이 터무니없이 컸다. 이는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

둘째, 매매대금의 액수의 합리성이다. 2012년 I조합의 감정평가액(11억6000여만원)을 근거로 정해진 매매대금 10억5000만원은 2012년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지만, 공시지가가 약 20% 상승한 2018년의 매매대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과도한 담보다. B는 대출 실행 시 I조합의 1순위 근저당권 외에, 자신을 근저당권자로 하는 2순위 근저당권 및 존속기간 30년의 지상권까지 설정했다. 단순히 명의만 빌려준 사람의 손해 방지책이라고 보기엔 과도하며, 오히려 잔금을 치르지 못한 매수인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2심은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실질적인 매매계약이 2012년에 체결되었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B가 받은 1억6000만원은 대여금이 맞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2심이 매우 중요한 법리적 원칙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바로 등기의 추정력이다.

등기의 추정력이란,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에 기재된 내용은 일단 진실한 것으로 법률상 추정된다는 원칙이다. 대법원은 이 추정력이 제3자뿐만 아니라 전 소유자인 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즉, 등기사항증명서에 2018년 12월 4일 매매라고 기재된 이상, 법원은 일단 2018년에 매매가 이루어진 것을 진실로 추정하고 재판을 시작해야 한다. 이 등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측(원고 A)이 그 추정을 뒤집을만큼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책임을 진다.

대법원은 2심이 이러한 등기의 추정력을 먼저 검토하고 이를 깨뜨릴 수 있는지 판단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정황 증거들만으로 2012년 매매계약을 인정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법원이 여러 정황 증거보다 등기사항증명서 기재 사항이 갖는 강력한 법적 추정력을 우선하므로, 실제 계약 내용과 등기사항증명서 기재 사항은 반드시 일치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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