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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시간만 벌어줄 뿐입니다.”
국회 경제재정연구포럼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저성장·저물가와 같은 지금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정과 구조조정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이 총재는 “지금의 저성장·저물가는 잠재성장률 하락, 인구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며 통화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정책과 구조조정이 같이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 재정은 고용과 경기 부진을 타개할 만큼의 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속 가능한 국가채무 최대치와 지금 국가의 채무 수준 차이를 추정한 각국 재정 여력을 보면, 우리나라는 241.1%포인트로 노르웨이(246.0%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는 독일 167.9%포인트, 미국 165.1%포인트, 영국 132.6%포인트 등 주요국보다도 앞선 수준이다.
이 총재는 “그동안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 다른 나라보다 어려움을 덜 겪고 신인도를 높일 수 있었고 향후 복지 수요 등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단기적으로 재정정책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통화정책의 경우 돈을 무한정 풀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기 때문에 성장 활력을 도모하는 데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도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 특성상 자본이 유출되지 않을지 등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더 우선할 과제로는 구조개혁을 꼽았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과정에서 실업자가 생기니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하고 소비 지출을 늘리려면 금리도 완화 기조도 가야 한다.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재정·통화정책 여력이 있어야 한다”며 “선진국을 보면 구조개혁 없이 재정·통화정책만 해 정책 여력이 고갈됐다”고 지적했다.
구조개혁이 모든 국가에서 부진한 상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가까운 일본을 사례로 들었다. 이 총재는 통화 팽창, 재정 확대, 구조개혁 세 개의 화살 가운데 마지막 화살을 언제 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일본은행(BOJ) 총재는 ‘일본 인구 1억2000명 가운데 3분의 1이 연금 소득자인데 연금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했다”며 “구조개혁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단히 어렵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역설했다.
특히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3% 내외로 떨어진 잠재 성장률 또한 높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총재는 “성장 잠재력을 결정하는 노동, 자본, 생산성 가운데 노동과 자본으로 버텨왔지만 인구가 고령화하고 저성장이 오래되면서 투자가 줄고 있다”며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생산성 제고는 시장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봤다.
이어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 서기로 있을 때 구조개혁과 신성장모델을 하라는 ‘양조론’을 주장했다”며 “구조개혁이 식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가 갈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전반적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주체로는 정부와 국회라고 판단했다. 그는 “실행 주체가 정부여도 국회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것”이라며 “우리 경제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성장을 이끌고 고용하는 주체인 기업이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