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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식당습격사건

지영한 기자I 2005.04.26 17:59:21
[edaily 지영한기자] 며칠 전 한국투자증권 구내식당에선 검정색 양복을 차려입은 일단의 건장한 청년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점심 메뉴로 준비된 오무라이스를 순식간에 바닥을 내버린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식당을 이용하던 건물 입주자들은 그 날 오무라이스를 구경도 못했다고 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증권부 지영한 기자가 전합니다. 여의도에 밀집해 있는 금융기관의 구내식당은 일반적으로 분위기가 정갈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리더라도 비교적 조용한 것도 특징이죠. 그 이유는 구내 식당 이용자들이 대부분 넥타이 부대들인 이유가 큰데요 얼마전에는 한 식당에서 평소때의 와이셔츠 분위기 때와는 영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소는 노조파업으로 시끄러운 한투증권 구내식당이었습니다. 시커먼 복장의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와 점심 메뉴였던 오무라이스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워버렸습니다. 식당을 찾았던 직원들은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신세가 되어버렸지요. 먹을 남은 음식이 있어야지요. 식당에선 개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흥분했다고 합니다. 식당의 한 아주머니는 "정도껏 먹었으면 했는데, 다들 어찌나 덩치도 크고 무섭게들 생겼던지 `그만 먹으라`는 말이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고 하더군요. 식당 직원들을 놀라게 한 일단의 청년들은 다름 아닌 경비업체 직원들인데요. 한투증권 회사측은 최근 노사대립 과정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비회사 직원들을 여의도 본사 건물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대략 200여명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일당이 2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물론 한투증권 취재를 위해 방문하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한투증권 본사 영업부 창구를 이용하는 한투 고객들은 요즘 건장한 체격의 경비업체 직원들이 늘어선 출입문을 비집고 드나들기가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닙니다. 아마도 식당 아주머니처럼 마음 약한 고객이라면 발길을 돌린 경우도 있을 지 모릅니다. 한투증권은 지난 4월1일자로 동원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됐습니다. 30년 역사가 말해주듯 한투증권은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많습니다. 과거 은행과 증권사를 통틀어 월급이 최고 수준이었고, 입사 하기도 쉽지가 않은 그야 말로 최고의 직장이었지요. 그래서인지 한투 직원들의 엘리트 의식도 매우 강한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실이 커졌고, 스스로 부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수혈받게 됐고, 공개매각을 통해 동원금융지주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게 됐죠. 한투증권은 오는 6월에는 동원금융지주의 자회사인 동원증권과 합병도 예정돼 있습니다.그래서인지 한투증권 고객은 물론이고 동원증권 고객들은 증권사 통합과정에서 혹시나 번거롭지나 않을 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투증권이 지난 달 29~30일 이틀간의 경고성 부분파업에 이어 이달 18~22일까지 닷새간 전면파업을 전개했으니, 고객들로선 불쾌감을 넘어서 불안감마저 느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험상궂은 경비업체 직원들이 본사를 에워싸고 있고, 각 지점에선 사복과 투쟁 조끼를 착용한 직원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보니, 고객들로선 한투를 방문하기가 당연히 꺼려질 수 밖에 없겠지요. 회사측은 "노조가 명목상으로는 독립경영과 고용안정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우리사주 손실 보전과 인수 위로금의 지급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고용안정도 주된 사안이고 임금과 복리후생 등 금전적인 문제도 주된 사안이다"며 회사측이 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노사 양측이 접점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노사대립이 길어질 수록 고객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커질 것입니다. 아예 등을 돌리는 고객들도 나타날 것은 자명합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외국계 가릴 것이 없이 우량고객 빼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한투증권 노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투증권의 고객들처럼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라면 누구나가 `모시고`싶은 마음 간절할 것입니다. 식사시간마다 가슴을 조아리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를 위해서라도 한투 노사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식당습격을 방불케하는 점심시간도 조용해질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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