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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마지막은 ‘백색’…미술관 개관 기다린 ‘사인 없는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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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26.08.25 06: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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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8m 층고로 쏟아지는 빛을 막아선 거대한 벽, 그 실체가 눈에 꽂히면서다. 은근한 회색빛을 머금은 채 위풍당당하게 들어선 세 개의 벽은 다름 아닌 박서보(1931~2023)의 마지막을 함께한 ‘백색 묘법’ 연작 3점(‘묘법 no230127’ ‘묘법 no230128’ ‘묘법 no230129’ 2023)이다. 한 점 한 점의 높이는 3m를 넘기고, 폭은 2m에 달한다. 세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서 말 그대로 시선을 압도한다.

박서보 마지막은 ‘백색’…미술관 개관 기다린 ‘사인 없는 3점’
하지만 비단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품은 공간의 시너지가 막대하다고 할까.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전시장이라면 으레 조명에 갇힌 흰 벽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데 이 공간은 자연빛을 응집한 화이트큐브다. 그 속에 ‘백색 묘법’이라니.

세 작품은 이제껏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다. 아껴뒀다고 할까. 박서보의 뜻이 그랬다. “내 미술관이 생기면 거기에 걸 작품”이라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었더란다. 그렇지만 ‘이제 완성해 손을 뗀다’는 의미를 갖는 사인까진 끝내 남기지 못했다.

한국화단에 ‘단색화’라 불린 모노크롬 회화의 길을 낸 박서보. 두툼하게 덧댄 한지의 표면을 파고든 골과 골, 수없이 긋고 그은 선으로 고랑과 이랑을 잇는 그 작업을 두고 자신을 비우는 수행이라고 여겼더랬다. 하지만 그저 한 개인을 다스리는 수련에 머물지 않았다. 한국회화의 질서를 바꿔버렸으니까. 그중 생애의 절정이라 해도 될 역작이 드디어 세상에 나온 건데. ‘박서보미술관’을 완공해 개관하면서다. 3년 전 타계한 박서보의 유지가 비로소 현실로 찾아온 셈이다. 미술관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에 자리를 잡았다. 생전 박서보가 살며 작업하던 터 그 옆이다.

생의 끝에서 만난 해외 작가…3년 만에 조우

조선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박서보의 ‘백색 묘법’ 세 점은 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의 한 축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또 생긴다. 박서보 이름 옆에 나란히 박힌 흐엉 도딘(81)은 누구인가.

그 사연을 찾으려면 2023년 7월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베트남 출신 프랑스 작가 도딘이 박서보를 찾아와 만났던 일인데. 말이 통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한국어·영어·프랑스어 등 3중 통역으로 의사소통을 했더란다. 하지만 그전까진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 2시간 남짓한 만남 끝에 일치를 본 순간이 있었는데. “자연이 내 스승이고, 난 항상 자연을 따른다”는 박서보의 말끝에 도딘이 “통역 필요없다, 다 이해했다”로 화답했을 그때였다. 결국 3개월 뒤 박서보가 떠났으니 사실상 해외작가와는 마지막 교류였을 그 시간을 미술관은 잊지 않고 개관전으로 이어낸 거다.

전시에는 박서보의 회화 25점과 도딘의 회화 17점 등 42점을 걸었다. 첫 만남이자 끝 만남이 된 그때의 공명이 무색하지 않게 두 작가의 화업은 묘하게 닮아 있다. 군더더기를 다 빼버린 화면에 깊이 몰입하는 일이 말이다. 다만 박서보가 한지에 선을 긋고 밀어내며 지우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행위에 시간의 축적을 담아냈다면, 도딘은 광물안료를 수십 차례 쌓아 올려 색의 층위에서 빛을 드러낸다. 전시명에 내건 ‘비움’과 ‘충만’이 그거다.

2인전이 갖는 교감이 그러하듯 전시작은 이질감 없이 섞여 따로 또 같이 주고받는 구성을 보인다. 말하진 않아도 전달됐던 그 자연의 감각을 공유한 두 작가의 작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이끈다. 결과 색, 감정과 사유를 공유한다고 할까. 가령 도딘의 푸르스름한 갈색 ‘무제’(1990) 곁에 박서보의 푸르스름한 ‘묘법 no.960513’(1996)과 갈색의 ‘묘법 no.950815’(1995) 등이 머무는 식인데. 마치 3년 전 그 여름의 그날처럼 말이다. 언어보다 진한 공감으로 전시장을 채웠다고 할까.

도딘의 전시작 중 눈에 띄는 한 점은 ‘오마주 투 박서보’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이다. 베트남 출신인 도딘이 프랑스에서 처음 접한 ‘눈’을 옮겨낸 추상회화(‘X.K.N.31’ 2025∼2026)인데. 아마도 박서보의 부음을 들은 뒤 여러 갈래로 흩어졌을 감정을 응축했을 터다. 흰 바탕 위에 안료를 겹겹이 쌓아올린 이 작업은 박서보의 ‘백색 묘법’ 3점과 멀지 않은 한 공간에 걸렸다.

‘박서보’라는 이름을 내건 개관전답게 오롯이 박서보의 수작만을 건 공간도 따로 꾸렸다. 짙은 회색이 주도하는 이른바 ‘아궁이 묘법’이 대거 나왔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밥을 짓던 아궁이에 켜켜이 쌓였던 그을음을 옮겨낸 ‘거무스름한 화면’을 가진 작품들(‘묘법 no.980403’ 1998, ‘묘법 no.980103’ 1998, ‘묘법 no.370628’ 1997 등)이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강렬한 ‘색’을 품은 몇몇 작품이 포인트컬러 자처하며 박서보의 세월에 화룡점정을 찍는다(‘묘법 no.100915’ 2010, ‘묘법 no.070313’ 2007 등).

“박서보의 성전으로 만들 생각 없다”

“박서보미술관에 박서보가 없는 전시를 할 수도 있다. 그가 떠났어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관을 박서보의 성전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미술관을 개관한 화백의 차남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의 얘기다. “미술 교육자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가자는 뜻에서 ‘기념관’이 아닌 미술관이 되려 한다”고도 했다.

그 시작은 2019년 설립한 기지재단에서부터였다. 2022년 8월 설계를 시작해 재단 명칭을 박서보재단으로 변경하고 지난 5월 최종 준공허가를 받았다. 미술관은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5개층 2000㎡(약 605평) 규모다. 최문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의 설계로 전시실 3곳과 커뮤니티 공간을 갖췄는데, 미술관으로서는 드물게 층마다 야외정원을 들인 것이 특징이다. 자연과 늘 동화하려 했던 박서보 생전의 바람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미술관을 건립하는 일은 녹록지는 않았다.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추진됐다가 중단됐고, 박서보가 생존해 있던 3년 전 제주에서는 기공식까지 열렸지만 지금껏 진행도 멈춤도 아닌 상태다.

박서보재단이 소장한 박서보 작품은 원화·판화 등 3000여 점. 예의 그 아궁이 잿빛을 옮겨낸 초기의 ‘검은 묘법’, 2000년대 들어 단풍색에서부터 끌어낸 ‘컬러 묘법’, 그러다가 결국 본질로 회귀한 듯한 만년의 ‘백색 묘법’까지 아우른다. 미술관 첫 길에 내놓은 전시작 25점은 그중 고르고 골랐을 터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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