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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정말 잘 모르겠다.” 배우 정보석(51)은 지난달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이 말을 세 번이나 했다. 극 중 주인공인 햄릿 캐릭터 해석과 표현에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소리다. 데뷔 27년 차다. 중견 배우는 ‘햄릿’으로 새로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작품에 온 신경을 집중한 탓에 몸에 무리도 왔다. 정보석은 “일어서는 데도 불편함이 있다”고 했다. “연습할수록 자신이 없고 어렵고 버겁다. 모르겠으니까 작품에 매달리고 있는 거다. 온몸이 부서져라 하고 있다.” 정보석은 “젖 먹던 힘을 비롯해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모든 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첫 햄릿 역 도전. 작품에 대한 그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드라마와 영화로 익숙한 배우다. 정보석이 ‘햄릿’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30년 꿈”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 좌절을 겪어 큰 꿈을 포기하면서 삶을 자포자기했다. 그때 셰익스피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그때 빠져들어 매년 한 번씩은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연기 시작하면서 햄릿 역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꿔왔다.”
운명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난 축복 받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까지했다. 즐거움은 여기까지다. 복잡 미묘한 캐릭터 해석이 발목을 잡았다. 연극 평론가인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햄릿’을 두고 “인간의 운명, 삶과 죽음, 개인과 가족·사회·국가와의 복잡한 얽힘의 양상 등 근원적 문제로 가득 차 있다”고 봤다. 때문에 연습 첫날부터 불안함이 밀려왔다. 고사할까란 생각도 했다. 정보석은 “꿈은 꿈으로 간직하는 게 더 아름답지 않나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온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햄릿’이다. 정보석은 연습하며 길을 찾아갔다. 극 전체의 감정 연결보다 상황 자체의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원초적인 감정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젊었을 때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햄릿은 미친 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 미치기 직전까지 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젊었을 때를 떠올려봤다. 근대사에서 가장 부침이 심했던 1980년도에 대학을 다녔다. 사회·나라를 위해 나서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시기다. 그러나 앞에 나가기에는 두렵고.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지는 못하고 꼬리를 따라다니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아가서 혼자 있을 때는 그 순간이 창피하고…. 그러한 내 모습들이 햄릿을 떠올리게 했다”
정보석은 “정리되거나 의도한 미친 척보다는 그 순간에 정말 미칠 수 있는 한 장면마다 날것의 감정이 드러나는 햄릿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연습을 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모르는 것 자체가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내가 안다고 생각해서 했으면 재미없는 햄릿이 탄생했을 지도 모르잖나. 어떤 햄릿을 보여 드릴 지 공연 올라갈 때까지 명확하지 않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이 인물을 가두거나 안정화시키고 싶지 않다. 마지막 공연까지 계속해서 진행되는 인물로 그리겠다.”
정보석이 출연하는 ‘햄릿’은 선왕의 원수를 되갚으려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고뇌를 그린다. 이번 무대 연출은 그간 상상력이 돋보이는 무대를 만들어 온 오경택이 맡았다. 여기에 클로디어스 역은 남명렬이, 거트루드 역은 서주희가, 플로니어스 역은 김학철 등 연기파 배우들이 나와 힘을 보탠다. 오필리어 역은 전경수가 연기한다. 오는 4일부터 29일까지.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