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력이 보여주듯이 그는 미국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했을 때 전쟁에 참전했고,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가장 호황을 누렸을 때 미 3대 자동차업체 중 한 곳인 포드에서 일했습니다.
미국인으로서 굳은 자존심을 갖고 있는 그는 항상 문 앞에 성조기를 걸어두고 있으며 옆집의 유색인종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 세일즈맨인 자신의 아들을 향해서도 혀를 끌끌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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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매사에 회의적인 월트에게도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포드의 자동차 `그랜 토리노` 입니다.
그랜 토리노의 모체인 `토리노`는 지난 1968~1976년 포드가 북아메리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중형차로 포드의 중형차 페어레인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토리노가 인기리에 판매되자 1972년 포드는 좀 더 긴 후드와 계란 상자 모양의 그릴을 장착한 그랜 토리노를 출시합니다.
월트가 애지중지하는 1972년형 그랜 토리노는 그가 포드 근무 시절 손수 제작한 것으로, 1970년대의 미국의 영화(榮華)를 상징합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세계 자동차업계를 석권하기 전인 당시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승승장구하던 때 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자동차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가운데, 미 자동차업체 `빅3` 중 자력갱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포드의 자동차가 영화의 중심 소재인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미국 역사상 20세기 전반에서 `가장 미국적인 인물`로 꼽히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혼다차를 몰고 다니면서 월트의 그랜 토리노에 눈독을 들이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인 `몽`족의 갱단이 등장합니다. 그랜 토리노에 대한 이같은 접근법은 `미국의 위상은 전과 같이 못하지만 미국적인 가치는 불변하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 등 미국의 영웅주의와 개척정신을 대변하는 영화로 명성을 쌓은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여서 이러한 메시지는 더욱 강조됩니다.
영화는 갱단이 월트 옆집의 친척 `타오`를 시켜 억지로 그랜 토리노를 훔쳐오도록 지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차를 훔치려던 타오는 월트에게 발각되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월트의 폐쇄적인 태도는 점차 누그러집니다.
월트는 미국 사회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는 유색인종과 깊은 교감을 느끼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게됩니다. 결국 월트는 타오를 갱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유산으로 아끼던 그랜 토리노를 타오에게 남깁니다. 영화는 타오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랜 토리노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장면에서 막을 내립니다.
그랜 토리노의 운전대가 타오의 손으로 자연스레 넘어간 것은 미국이 주도했던 번영기가 이제 다른 주체로 교체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꼬장꼬장한 월트도 이같은 변화를 인정합니다.
통상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황색인종은 유색인종 중 가장 비중없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는 `21세기의 미국`으로 예견되는 중국의 부상을 간접적으로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황색인종을 나타내는 인물들로 `몽족`을 등장시켜 직접적으로 중국인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월트는 이들을 `중국인들`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례없는 금융위기로 극심한 경기후퇴를 겪으면서 위상이 크게 손상됐습니다. 또 13억 인구의 중국이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세계 지배)`도 막을 내리게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하게 했던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도 최근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 영국 런던에서 오는 2일(현지시간) 개최 예정인 주요 20개국(G20) 회담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G2는 암묵적으로 미국과 소련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중국을 지칭하는 게 됐습니다.
미국이 앞으로 역사 속에서 월트처럼 품위있게 권력을 내줄 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차기 경제대국이 바통을 이어 받을만한 그릇으로 성숙해질 수 있느냐도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