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광범 기자]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판사 임용 자격을 법조 경력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가운데 진보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나홀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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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법조인 판사 임용 후 선발 인원 미달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조 경력을 더이상 강화하지 않고 현재 시행 중인 ‘5년 이상’을 유지하는 내용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최소 법조 경력 요건을 단축하는 이번 개정안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갖춘 판사의 신규 임용을 쉽게 해 국민의 신속하고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민변은 “제대로 된 법조일원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제도를 퇴행시키는 시도”라며 “법원 개혁의 퇴행을 불러올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민변은 “법조 경력 10년 설정은 법원 내 기수·서열 중심의 인사 구조가 낳은 법관 관료화 경향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며 “아울러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법원 모습을 평가해 왔던 사람들이 법관이 된다면 법원의 순혈주의적 의식은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급변하는 법조계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법조 경력 판사를 임용한 이후 법원은 판사 임용에서 과거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판사 임용을 위한 적정 법조 재직 연수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임용 판사 인원은 2006~2012년 사이 연간 149~175명이었으나 법조 경력이 자격 요건이 된 2013년 이후엔 2017년(161명), 2020년(155명)을 제외하고 매년 39~111명에 그쳤다. 정원에 미달한 것이다.
법조일원화 이전엔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법관 임용이 결정돼 비교적 예측 가능성이 높았지만 2013년 이후부턴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우수 인재의 지원이 줄어든 것이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우수한 신입 법조인들 중에선 검찰이나 법무법인 등에서 자리 잡은 후 판사 임용에 굳이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10년차 검사·법무법인 변호사, 판사직 도전 미지수”
이 같은 상황에서 판사 임용 자격이 법조 경력 10년으로 확대될 경우 지원자가 급감할 것이란 위기 의식이 작용해 결국 법원조직법 개정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법조 경력 10년 법조인이면 통상 소속 집단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상황”이라며 “소속 집단에서 자리잡고 있는 법조인이 얼마나 판사 임용에 도전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실제 그동안 판사 임용 지원자 중 법조 경력 10년 이상 지원자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첫 법조 경력 판사 임용이 시작된 2013년 23%에서 2014년 26.3%까지 상승하기도 했으나 2019년과 2020년엔 각각 7%와 8%에 그쳤다.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의 판사 임용 비율은 지난해 3.2%에 그쳤다.
민변은 개정안 반대의 또 다른 이유로 평생 법관제 강화와 대등재판부를 통한 사실심 강화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판사들의 퇴직 감소와 평생 법관제 정착 등에 힘입어 대등재판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판사들의 퇴직률은 2010년 3.02%에서 2019년 1.78%까지 낮아졌고 평균 연령도 2020년 38.9세에서 2019년 42.9세까지 높아졌다. 향후에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초임 법관의 경우 배석 기간을 통한 판결 작성 등의 업무 숙지가 필수적인 만큼 경력 10년 이상의 법조인들에겐 오히려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신임 법관과 전국법관대표회의 법관 대표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경력 10년 이상’안에 대해 신임 법관의 83%, 법관 대표의 73.7%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부적절하다는 응답자 10명 중 8명이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들은 각자의 직역에서 자리를 잡았으므로 법관으로 전직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 내 인적 구성은 법조일원화가 처음 논의되던 당시와 전혀 다르다”며 “국민들의 재판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으로 판사 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법원도 민변 반발과 관련해 27일 “이번 개정안은 과거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사법개혁위원회에서의 사법개혁에 대한 후퇴라고 할 수 없다”며 “법조일원화를 현실에 맞게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