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종성 김상윤 기자] “재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공약을 보면 대기업에 대한 옥죄기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대기업의 투자 위축을 야기해 수많은 1, 2차 협력사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정한 경쟁과 새로운 먹거리 발굴 등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대기업 규제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재벌을 적폐로 규정한 문 대통령이 대기업을 타깃으로 추진할 ‘경제민주화 드라이브’가 부담인 탓이다.
당장 지난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던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 등 상법개정안의 재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법인세를 올리고 총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도 걱정거리다. 특히 재계 대변인을 자처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데다, ‘맏형’ 삼성이 대관업무를 중단한 상황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제대로 된 창구조차 없어 난감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간신히 막았는데’..상법개정, 재추진될까 ‘전전긍긍’
문 대통령은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로 이사회의 감독 기능과 소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 고유의 권한인 경영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와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은 커다란 파장이 우려된다는 게 재계 입장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감사위원 이사를 뽑을 때 소액주주가 선발하는 감사위원을 늘리기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6곳의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이 법이 통과되면 내부자, 전략적 투자자, 국내기관 등의 지분을 모두 합할 경우 29.7%인데,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17.5%로 떨어진다. 반면 외국 기관의 의결권 지분은 도입 전후 모두 28.7% 그대로여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2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이사 수와 같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와 집중투표제가 결합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이사회에 진출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이사회에 참가하면 단기 실적,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 대기업들의 투자 여력은 굉장히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회사의 지분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부실경영에 대해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불필요한 소송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에서는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판례로만 일부 인정된 적이 있고, 일본에서는 100% 자회사라는 기준을 두고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 공정위 강화..재계 ‘산넘어 산’
시장 저항을 고려해 ‘단계적’ 적용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공약도 부담이 되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는 금산분리와도 연결돼 있어 삼성, 현대차 등 금융계열사를 끼고 있는 기업들에게 미치는 파장이 클 전망이다.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들도 안심할 수 없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으로 추가 지분 매입을 위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대기업에 대한 조사·감시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이데일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공정위가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식으로 시행령을 상당히 완화했는데, 이를 원상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4대 재벌이 국내에서나 대기업이지 나라밖에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피말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너무 옭아매려고만 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면서 “대기업의 투자, 고용이 위축되면 전반적인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