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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21년 6월 12일 전 여자친구인 피해자 B씨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에서 집 안에 있는 B씨의 대화 등을 녹음하기 위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한달 뒤에는 B씨 집 현관문에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기재된 마스크를 걸어놓고, B씨의 사진을 올려놨다. A씨는 B씨 집 안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다.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재판과정에서 “다세대주택 입구에 시정장치 또는 보안장치가 돼있지 않았고 계단 또는 복도에 있다가 조용히 나왔으므로 피해자의 사실상 평온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다세대주택 입구에 지정장치 등이 없는 경우라도 그 거주자들을 위해 계단과 복도에서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며 “현관문 앞에 마스크와 사진을 놔두는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자신의 주거 내에서 누려야 할 사생활의 자유는 이미 침해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공동현관에는 도어락이 설치돼 있지 않고 경비원도 없었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이 거주지 출입문 앞까지 왔던 것을 전혀 몰랐고, 피고인이 문을 열려고 하거나 두드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행위가 공동주택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등의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단지 계단을 통해 공동현관까지 들어간 행위를 거주자의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인 ‘침입’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 이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A씨의 행위가 ‘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2심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들어간 이 사건 건물의 공동현관, 공용 계단, 세대별 현관문 앞부분은 거주자들의 확장된 주거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상가나 공공기관 등과 비교할 때 사생활 및 주거 평온 보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큰 곳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고인의 출입을 승낙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는 피고인이 현관문 앞까지 들어온 행위를 그 당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알게 된 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로 공포감을 느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이 사건 건물에 출입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주거침입죄의 ‘침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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