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각종 할인 지원과 세제 혜택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의 체감물가를 직격하는 먹거리 가격은 잡히지 않는 상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의 물가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업계의 협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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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6일 발표한 ‘2024년 2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3%를 웃돌던 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2.8%) 2%대로 떨어졌으나 두 달 만에 도로 3%대로 올라왔다.
2월의 오름세는 과일이 주도했다. 지난달 신선과실은 오름폭은 41.2%로, 지난 1991년 9월(43.9%) 이후 무려 32년 5개월 만에 가장 컸다. 망고(-10.5%) 등 할당관세가 적용된 일부 수입과일은 가격이 하락세였으나, 지난해부터 수급 문제로 고공행진 중인 사과와 배는 각각 71.0%, 61.1% 급등해 강세를 이어갔다. 이에 귤(78.1%), 딸기(23.3%) 등 대체재가 된 다른 과일도 크게 올랐다. 과일을 포함한 농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20.9% 올라 전체 물가를 0.80%포인트 끌어올렸다. 2011년 1월(24%) 이후 13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상승한 것이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농산물의 물가 기여도가 큰 상황에서 작황 부진으로 인한 공급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며 “귤의 경우 2월부터는 노지귤 출하가 줄어들고 있으며, 과일 수요가 높아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장바구니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과일 외 26개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채소는 지난해 3월(12.9%) 이후 최대 폭인 12.3% 올랐다. 고등어와 오징어 등이 포함된 수산물을 의미하는 신선어개 역시 1.4% 오르면서 전체 신선식품지수 역시 3년 5개월(2020년 9월, 20.2%) 만에 최대 폭인 20.0% 상승했다.
물가 집계 시 가중치가 큰 석유류의 하락 폭도 전월(-5.0%)보다 축소돼 1.5%에 그쳤다. 이에 기여도는 -0.21%포인트에서 -0.06%포인트로 줄면서 전체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지난 1월 중순부터 상승한 국제유가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 원유 수입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 2일 75.9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오르기 시작해 이달 8일 80.56달러를 기록한 뒤 내내 8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서비스 물가는 2.5% 오르며 전달(2.6%)보다 상승 폭이 다소 축소됐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3.4% 올랐고, 이중 외식 물가는 3.8% 올라 2021년 10월(3.4%) 이후 28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둔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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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의미하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물가 상승의 주 요인인 농산물과 석유류가 제외된 지수와 헤드라인 물가와는 괴리가 있는 상태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114개 품목으로 구성돼 실제 체감하는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3.7% 올라 전체 물가보다 상승폭이 더 컸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농축수산물 할인, 과일 관세인하 등 각종 지원책을 총동원하고 있으나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특히 1년 주기로 출하되는 과일의 경우 ‘생육 부진으로 인한 생산량 급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달 말 종료하기로 했던 유류세 인하 조치도 8번 연속 연장해 오는 4월까지 적용한다는 방침이나 국제유가라는 외생변수 대응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먹거리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기존 수급상황실을 비상수급안정대책반으로 개편하고 농축산물 수급 상황을 일일 점검하기로 했다. 납품단가 지원과 할인지원에 총 234억원을 투입하고 만다린, 두리안 등 수입과일에도 할당관세를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물가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원가 하락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는 식품기업에 경고장을 날렸다. 최상목 부총리는 이날 주재한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 가량 하락했으나 밀가루, 식용류 등 식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원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했다면 하락 시에는 제때 하락분만큼 제대로 내려야 국민들께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경영활동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