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조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통해 항공, 호텔, 유통 등 코로나19에 매출과 이익감소가 두드러지는 기업을 대상으로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중 20%는 자체상환, 80%는 산업은행이 총액인수해 차환리스크를 해소해줄 방침이다. 정부는 2001년 2조1000억원, 2013년 6조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시행한 바 있다.
낙인 효과도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적극적으로 신속인수제를 신청한 기업에 대해 시장은 오히려 유동성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아 조달비용이 오르는 등 정책당국의 유동성 투입 외 조달 여건이 오히려 제약돼 신용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도덕적 해이와 낙인효과 등 부정적 효과는 결국 현재 유동성 위기 본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며 “현재 위기가 실물경제 침체국면전환과 기업 채무변제능력 악화 추세에 의한 펀더멘털상의 위기인지, 아니면 코로나19로 인한 기업들의 일시적 매출, 이익감소로 일시적 유동성 고갈인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만약 전자인 펀더멘털상의 위기라면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2조2000억원이긴 하지만, 공적자금에 대한 엄연한 낭비이며, 구조조정과 통폐합 등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후자인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라면 현금흐름이 회복될 때까지 유예시간을 줘 기업의 일시적 자금조달 유동성을 해소하고, 금융시장 실패를 방지해 시장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
이태훈 연구원은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해답은 명확치 않다”며 “실제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위기 이전에도 기업의 원리금 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불확실성은 높아지는 추세였다”며 “크레딧 펀더멘털은 채무상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채무상환이 확실히 가능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확실한 것은 현재의 유동성 위기는 투자자들의 기대변화에 따른 자기실현적 위기라는 것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코로나19를 자연재해로 인지하고 기업들의 유동성 위험이 심각하지 않거나 일시적이라고 예상한다면,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많고, 제도의 부정적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모든 투자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과 금융의 복합위기라고 생각한다면, 지난 2주의 유동성 위기보다 더 큰 파장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대상기업은 2001년 성공적인 일시적 유동성 위험 경감의 뒤를 잇는 모범적 사례로 남을지, 제2의 한진해운 전철을 밟게 될 지 주목된다”며 “코로나19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를 고려하면 당분간 정부의 기업 살리기에 무게 중심이 위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1년에는 자구이행계획을 수락한 하이닉스,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석유화학, 쌍용양회, 성신양회 등 6개 기업의 경영성과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로 개선됐거나 적어도 낙인효과 등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