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한 명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몇 명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초감염재생산수(RO)가 국내에선 기존에 알려졌던 0.6∼0.8명보다 6배 이상 많은 4명인 것으로 잠정 추산됐다.
24일 사단법인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에 따르면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최재욱 교수팀은 대한의사협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메르스 관련 특별기고(한국 메르스 감염의 역학현황과 공중보건학적 대응 조치 방향)에서 이달 11일 기준으로(126명의 확진자 중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1명 제외) 메르스의 RO는 4.0이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감염력을 6배 이상 웃도는 결과라고 밝혔다. 다만 이 수치는 현재까지 알려진 제한적인 역학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된 추정치여서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사스의 기초감염재생산수(R0)는 0.8, 메르스 바이러스의 R0는 0.69란 연구결과가 있다. 방역당국이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나왔을 때 기존 RO(0.6∼0.8)에 근거해 감염력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로 인해 슈퍼전파자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최 교수팀은 추정했다.
한 명의 슈퍼전파자가 80여명을 감염시킨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2003년 중국 베이징에선 3명의 사스 환자가 각각 10명이 넘는 2차 감염자를 발생시켰다. 싱가포르에선 2003년 사스에 감염된 238명 가운데 5명의 슈퍼전파자가 나와 한 명이 최대 37명까지 전파시켰다. 베트남에선 33명의 사스 감염자 중 슈퍼 전파자는 없었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2차 감염도 발생하지 않았다
최 교수팀은 특별기고에서 “병원 내 제한된 공간 내에서의 에어로졸 등 공기전파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학적ㆍ실험적 연구결과들을 고려할 때, 메르스 바이러스의 병원 내 공기감염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기술했다. 또 공기 중에 떠있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감염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도 아직 불충분하다고 했다.
공기전파는 직경 5㎛ 크기 미만의 비말이나 비말 핵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호흡이 곤란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와 기관 내 삽관, 가래 제거 등 호흡 보조를 받는 도중 폐에서 에어로졸(aerosol)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에어로졸에 바이러스가 포함돼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 최 교수팀의 주장이다.
최 교수팀은 “메르스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폐 아래 부위를 침범해 감염되기 때문에 일반 환자들은 기침을 해도 메르스 바이러스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지만 폐렴환자 등 호흡보조가 필요한 중증 환자에선 언제든지 에어로졸 형태로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메르스 환자를 치료할 때 인공호흡기와 기관 내 삽관, 가래 제거 과정에서 에어로졸이 발생될 수 있다며 이로 인한 ‘공기 전파 주의’를 권고했다. 최 교수팀은 정부가 방역의 기본인 ‘사전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의거해 병원 내 공기감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방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최 교수팀은 “사스(SARS)도 발생 초기엔 비말감염으로 간주됐다”며 “항공기 안에서 감염자 좌석 기준 7줄 앞에 자리했던 승객이 감염되고 한 호텔의 같은 층을 사용했던 손님 중 다수가 사스에 걸린 뒤 공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고 (뒤 늦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메르스의 경우 사스와는 달리 지역사회에서의 공기감염 위험성에 대한 명백한 역학적 증거가 없다”며 “메르스가 지역사회 내에선 공기감염의 우려가 없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국내에선 메르스의 일반적인 증상인 고열을 보이지 않으면서 메르스로 확진된 환자들도 나왔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감염자의 36.2%가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이란 것도 국내 메르스의 특징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