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세형 기자]정치권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나선 가운데 정작 환영해야 할 중소기업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들 역시 대기업을 본떠 사업을 확장하거나 지배구조를 구축해온 탓에 일감 몰아주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의 실천방안 중 하나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급부상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경제민주화 2호 법안으로 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금지 법안을 공언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소·중견기업은 이전보다 대기업과의 거래 규모가 늘어나면서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처지다. 중소·중견기업들 역시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지난해말 공정거래법과 상속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와 처벌 근거가 마련됐다. 두 법안의 개정 과정에서 중소기업계가 당초 취지가 대기업 규제인 만큼 중소기업은 예외로 해줄 것을 건의했지만 어떤 규모를 막론이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증여나 재산 불리기는 안된다는 논리 앞에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처럼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핵심 분야만 남기고 생산 공정을 별도 자회사로 분리하거나 일부 공정은 분사 형태의 아웃소싱을 추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소기업 최대주주도 개정된 상속증여세법상의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돼 과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자동차부품업체인 A사는 비용절감과 기술 유출방지 차원에서 일부 공정을 분사하면서 책임경영 차원에서 대주주가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경우 현행 법대로라면 일감 몰아주기가 돼 증여세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중소기업은 법인 지분이 아닌 가족 등 개인 지분 형태로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 최대주주가 부담해야 할 세금이 대기업 오너보다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자신들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경영자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이 대기업 규제라더니 왜 나한테도 세금을 물리느냐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또 정치권은 당장 대기업 규제라는 화두에 얽매여 성과 올리기에 급급하기 보다 중소기업이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