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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선크림을 의약품(drug)으로 규제하는 반면, 유럽과 아시아는 화장품(cosmetic)으로 분류한다. 화장품 과학자 미셸 윙은 이 때문에 “미국 과학자들은 사용할 수 있는 자외선 필터 종류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질감이 좋고 다른 메이크업 제품과 잘 어우러지는 선크림을 만들기 더 어려워졌다.
특히 한국산 선크림은 성능과 질감, 다른 메이크업 제품과의 조화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것으로 유명해, 미국 소비자들은 관세로 한국산 자외선 차단제 가격이 오를 것을 대비해 사재기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산 선크림 1년 치를 구매했다는 한 레딧 사용자는 “더 이상 미국산 선크림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탄했다.
미국 잡지 ‘디애틀린틱’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조선미녀’의 선크림은 첨단 자외선 차단 필터로 하얗게 들뜨는 현상이 없었는데도 가격이 18달러인 반면, 미국산 유사제품은 끈적이는 질감에도 가격이 40달러라고 지적했다.
사실 미국 소비자들이 사재기를 하는 것은 한국산 선크림뿐만이 아니다. 디애틀랜틱은 ‘내 달팽이크림이 무역전쟁에 휘말렸어요’라는 기사에서 한국산 화장품 애호가들이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한 사용자는 지난해 12월 “이제 곧 관세가 미쳐 날뛸 테니 한국화장품에 월급을 다 써버렸다”고 말했다. 한 뷰티 인플루언서는 틱톡에서 “여러분의 광채를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사세요. 곧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한미 관계 전문가 앤드류 여 선임연구원은 이번 관세가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무(無)관세로 즐길 수 있었던 미국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K뷰티, K팝, K드라마를 사랑해 구매한 것이라면 가격 인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별 효과가 없다”라고 느낀다면 미국산 화장품으로 돌아갈 것이란 설명이다.
물론 미국 생산을 늘리는 것으로 한국 화장품이 관세를 회피할 수 있다. 다만 여 연구원은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이 이 관세가 얼마나 오래 갈지, 미국 소비자들이 얼마나 가격 인상에 반응하는지 지켜본 뒤 1년 정도 지나서야 미국 진출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시장의 성장세를 확인한 후, 대규모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설사 미국 생산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한국 화장품이 그 ‘매력’을 유지할 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인 조슈아 듀파야는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점이 바로 K뷰티의 핵심 매력”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조선미녀는 최근 미국시장 전용 선크림을 출시했지만, 이 제품은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승인한 자외선 차단기술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 제품에서 미국 선크림과 동일한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 한 스킨케어 인플루언서는 이 미국 전용 제품에 대해 “완벽한 쓰레기다”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