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그래, 니들이 고생이 많다"

정원석 기자I 2009.04.15 16:04:46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이두형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14일 “최근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로 취약해진 국채 매수기반 확대에 기여하자는 차원에서 이르면 내달부터 연말까지 연간 3조원에 가까운 국채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추경용 국채 발행`에 따른 채권시장의 수급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증권금융이 발벗고 나서겠다는 것이다. 증권금융이 만기 3년 이상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증권금융의 국채 매입효과는 당장 다음달 국채 입찰 때부터 영향력을 드러낼 전망이다. 한 증권금융 관계자는 “추경으로 발행이 늘어나는 국채 3,5년물을 입찰을 통해 인수할 것이며, 연말까지 매월 순차적으로 매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권금융이 3조원 가량 국채를 매입하게 되면 국채 3,5년물 입찰에서 월별로 평균 3750억원 가량 추가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국채 입찰 때마다 소화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는 시장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게다가 시중의 단기자금을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증권금융은 단기 자금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다. “시중의 단기 부동자금을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측의 바람을 현실화시켜준 셈이다.

◇ "단기로 자금 조달하는 기관이 중장기물 채권을 왜 매입하나?"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증권금융의 국채매입을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년 미만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관이 만기가 3년 이상인 자산을 매입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증권금융이 활용하고자 하는 국채 매입 재원이 증권사들로부터 수탁 받은 CMA 자금과 개인고객과 법인에게 단기에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고 받은 예수금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개인 고객과 법인이 맡긴 예수금은 대체로 만기가 1년이 안되는 자금들이다. 증권사 등이 수탁한 CMA자금도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져 `CMA런`등이 현실화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소지가 있는 자금이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장을 통한 국채 소화”를 호언장담한 것이 정부 유관기관들의 국채매입을 염두에 뒀던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추경용 국채 입찰`을 전후로 국채 중장기물을 적극적으로 사고 있는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 증권금융 "재원 충분하고 리스크 관리 능력도 갖췄다"

물론,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나선 증권금융 측은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 증권금융 관계자는 "80조원에 이르는 증권금융의 자산규모를 볼 때 3조원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며 "현재 4조5000억원인 CMA자금 중 3조원 정도가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유지되고 있어 국채매입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증권금융측은 올해 CMA자금이 7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채 매입을 할 수 있는 재원 확보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증권금융 관계자는 "현재 자산포트폴리오 등을 볼 때 3조 가량의 국채를 매입할 여력이 있다"며 "그동안 자산운용을 하면서 시장이 우려하는 리스크관리에 대한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이에 대해 "리스크 관리에 자신감이 있어 국채 중장기물을 사겠다고 나선 것 아니겠냐"면서도 "유동성 리스크는 크지 않지만, 금리상승에 대한 자본이득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정부가 유관기관 끌어들여 금리상승 막는것 아니냐"

시장이 증권금융 등 정부 유관기관들의 국채 매입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나타내는 것은 시장의 정상적인 가격결정 매커니즘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수급부담이 증가한 만큼 금리가 오르는(가격이 하락) 것이 당연한 데, 시장 밖에 있는 돈을 끌여들여 가격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은 시장의 원리대로 대응한다"는 당초 정부측의 입장과도 상반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 논리로 문제를 풀겠다고 하면서 시장 밖에 있는 팔을 비틀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같은 불만은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가격은 언젠가 다시 튀어오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한 시중은행 채권 매니저는 "현재 가격은 시장가격이라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정부 정책의 실패가 나타나는 순간 인위적으로 잡아둔 금리가 튀어오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증권금융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리스크를 감수하고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다"며 "정부 등의 압력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최근의 금리하락세를 정부의 권위가 작용해 형성된 것으로 보는 듯 하다. "그래, 니들이 고생이 많다"는 요즘 뜨는 한 여성 개그맨의 유행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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