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수헌기자] 재계 뿐 아니라 상당수 언론까지 나서서 문제제기를 했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어제(9일)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업들이 허탈감에 빠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정부의 기업정책이 얼마나 기업들을 옥죄는 방향을 진행될지 벌써부터 걱정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날로 경제상황은 어려워지고 기업들은 의욕을 잃어가는 현실을 산업부 김수헌 기자가 우려스런 시각으로 짚어봤습니다.
요즘 기업에 계신 분들을 만나보면 기업할 맛 안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도처에 깔린 것이 기업을 조이거나 압박하는 것일 뿐 잘 돌아가게 기름칠 해주는 것은 별로 없다는 하소연들입니다. 이젠 불평하는데도 지쳤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죠.
요즘 SK(003600)㈜ 석유개발사업팀 김현무 상무는 석유개발사업보다는 국회나 산업자원부를 찾아다니는 대외활동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회사는 석유나 가스같은 에너지 개발을 가장 열심히 하고 있고 또 뛰어난 성과도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 이 회사 석유개발사업부 22명이 올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무려 2500억원과 19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은 이미 이데일리 기사를 통해서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근데 이 회사는, 믿기 어렵겠지만 석유개발과 관련한 정부 정책자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기 때문이죠. SK㈜ 외국인 지분은 60%가 넘습니다. 20년전에 만들어진 해외자원개발사업법에 외국인 지분 50%가 넘으면 `외국인 기업`으로 간주돼 정책자금이 뚝 끊깁니다.
석유개발사업의 모든 리스크를 회사가 몽땅 떠안아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사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회사가 그만큼 투자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이걸 막을 순 없습니다.
같은 정유업계 기업 중에서 외국인이 대주주로 들어앉아 경영권을 행사하거나 50대50 해외 합작을 한 곳마저 우리나라 정부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는데, 정작 토종자본 기업은 지원을 못받고 고군분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기업이 나서서 이런 것을 좀 풀어달라고 정부에 통사정을 하고 국회를 찾아가서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도 쉽지가 않습니다.
20년전에 법을 만들때는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 기업은 당연히 외국기업으로 봐야했겠죠. 그러나 지금 기업들이 글로벌화되고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이미 외국인 지분 40~50%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현실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법규정에 정부나 국회가 먼저 나서서 손을 대야 마땅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군요.
또 하나 더 이야기 해봅시다. 지금 삼성과 토지공사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화성 동탄신도시 공장부지 분양가격 문제입니다.
삼성은 화성 반도체단지에 2010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누적매출 200조원, 새로운 일자리 1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지난 94년 이후 수출비중 10% 이상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국가경제를 이끌어 온 주도품목 역할을 해 왔죠.
지금 중국같은 나라는 반도체 사업을 키우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전략을 짜서 전폭적으로 지원 양성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중국의 첨단산업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가지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의 중국진출을 우려하는 것도 이같은 중국의 의욕때문에 혹 기술유출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이죠. 이런 중국의 공장 땅값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과의 비교를 차치하고라도, 토지공사가 제시한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2단지용 부지 평당분양가가 222만원이라는 사실에 약간은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공장땅값 치고는 상당히 비싼 편이죠. 물론 토공이 책정한 이 가격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삼성은 이 점 인정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그러나 이 땅값은 너무 비싸다며 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했죠.
아마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같은 돈많은 회사가 쩨쩨하게 그 정도를 가지고 뭘 그러냐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입니다. 삼성전자는 1년에 7조~8조원 이상을 시설투자에 쓰고 있습니다. 쉼없이 투자하지 않으면 어느새 낙오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메모리반도체나 LCD에서 뒤진 게 그 때문이 아닙니까.
많이 버는만큼 많이 투자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아낄 수 있는 것은 아껴서 기업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투입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토공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화성동탄 신도시는 애초 택지지구로 개발됐고 따라서 조성원가가 높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토공은 값이 비싸면 사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삼성측에 하는 것 같습니다.
삼성은 조성원가비용 항목에 들어가있는 신도시 외곽 고속화도로 비용 1조600억원만이라도 조성원가 산정에서 빼 달라는 요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산업단지에 들어설 공장부지의 경우 도로나 수도 같은 기반시설비용은 정부가 보조를 해 주는데, 이번 화성동탄 부지는 택지개발법에 따라 정부보조가 없기 때문이죠. 산업단지 땅값 수준을 아니더라도 도로 건설비 정도만 원가에서 좀 빼보자는 겁니다.
토공 말대로 억울하면 땅을 안 사고 반도체 공장을 다른데 지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 수립된 기흥 화성단지 플랜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 우수인재확보와 연구개발네트워크, 제반 기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삼성이 화성2단지를 포기하는 것은 막대한 부담을 각오해야 합니다. 간단하게는 화성 1단지 14, 15라인 기반공사에서 발생한 토사를 2단지 정지작업에 투입하지 못하고 갖다버릴려면 수백억원의 돈이 들어갑니다.
화성동탄 지역에는 이미 몇몇 삼성 납품 중소기업들이 평당 200만원을 주고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토공측에서는 "중소기업도 아무말 없이 들어와 있는데 삼성만 유독 그러냐"고 면박을 주는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이 평당 200만원짜리 땅에 공장을 지어서 이익을 내려면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할까요. 이익율 세계 1위 수준인 삼성도 갑갑해 합니다.
어제 결국 재계와 상당수 언론들까지 나서서 문제제기를 했던 공정거래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말로 출자총액을 그렇게 단단하게 묶어놓고 금융사 의결권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깎지 않으면 기업들은 항상 금융사를 이용해 지배력을 늘릴 궁리만 하는 집단인가. 기업들은 틈만 주면 호시탐탐 규제를 빠져나가 총수나 대주주 일가의 가공(가공) 지배력만 키우려는 집단들인가. 아마도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여당이나 공정위는 그렇게 보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러한지는 제가 답을 제시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건 독자들의 판단해야 몫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