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가상자산시장 혹한기(Crypto Winter)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11월 역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로부터 근 1년 가까이 계속 불어닥치는 한파에 끝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가장 큰 상장 채굴업체까지도 파산보호 신청을 눈앞에 두게 됐다.
서서히 채굴업자들의 무조건적 항복(Capitulation)이 임박해지면서 가격 반등 신호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코인 생태계의 가장 강력한 축이자 대표적인 장기보유자들이 취약해지면서 생태계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현지시간) 코어 사이언티픽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이대로 가면 파산보호 신청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이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못 갚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어 사이언티픽이 현금 고갈로 인해 장비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는 루머는 하루 전부터 들려왔지만, 사실 유동성 부족에 대한 경고는 최근 꾸준히 울렸었다.
이번주 초 크리스 브렌들러 D.A.데이비슨 애널리스트는 코인 사이언티픽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면서 “여러 면에서 아직도 최고의 채굴업체지만, 여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이어 “업계 상황을 체크해 보면 예상보다 훨씬 더 유동성 부족이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이날 코어 사이언티픽은 “현재 회사가 가지고 있는 현금은 2660만달러이고 비트코인은 24BTC만큼 있다”고 했다. 24BTC는 현 시세로 49만5000달러에 불과하다. 불과 한 달 전이던 지난 9월 말 실적 공시에서 보유 현금과 비트코인이 각각 2950만달러, 1051BTC라고 했던 만큼, 그동안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비트코인을 팔아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회사 측은 “증자나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금 확보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지만, 현재 좋지 않은 주식시장 상황과 빠르게 뛴 시장금리 등을 감안할 때 현실성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채굴장 건설을 비롯해 자본지출 집행을 연기하면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코어 사이언티픽도 이번 코인 혹한기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파산한 코인 대출업체 셀시우스로부터 수백만달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고, 이 미지급금으로 인해 하루 5만3000달러씩 손실이 누적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7월에 비트코인 7000BTC를 팔아서 자금을 확보했지만, 여유는 오래 가지 못했다.
또 이더리움이 머지(Merge)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존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자, 이더리움 진영의 채굴업자들이 무더기로 비트코인 쪽으로 넘어왔다. 이에 비트코인 채굴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된 것도 채굴업자들의 채산성 악화를 부추겼다. 실제 비트코인 해시레이트가 260엑사헤시(EH/s)까지 치솟으면서 채굴 난이도는 연초 26.64조에서 36.84조까지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처럼 채굴에 들어가는 원가나 비용이 늘어나는 부담에다 고생해서 채굴한 비트코인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악재까지 겹치니 채굴업자들은 이런 이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채굴업자들은 사업을 계속 영위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손절매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이는 시장 내 매물을 늘리는 악재가 됐다. 지난 8~9월부터 매주 채굴업자들의 비트코인 순(純)포지션은 매도 우위를 보여왔다. 실제로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상장된 채굴업체들이 올 들어서만 보유 비트코인 30% 이상을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굴업자들의 이 같은 무조건적 항복 국면은 향후 잠재적 매물 부담을 줄여 준다는 점에서 가격 반등의 신호로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좀더 길게 보면 비트코인 생태계 약화와 장기보유자 감소에 따른 시장 안전판 부재라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