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상 25시)UAE원전 수주 성공, 제발 그만 떠들자

박상기 기자I 2010.01.05 14:19:45
[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UAE 47조 원전 사업 수주로 온 언론이 떠들썩하다. 그리고,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전 국무총리의 협상 무용담이 언론을 도배질하고 있다.
 
국가 최고 통치권력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협상전략을 기업에 코치하고, 아랍의 왕세자를 감복시키고, 각종 위기 상황에서 절묘한 각종 협상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 건설수주 건을 따 내었다는 얘기다. 정말 대단한 성과이자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금번 수주에 크고 작은 기여를 한 모든 분들에게 치하와 축하를 드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금번 사업건은 단순한 상품 판매계약이 아니라, 최초 발주 계약서에 상호 합의한 그대로 사업이 완료된다는 보장이 힘든 대규모 장기 토목공사이다. 더욱이. 프랑스와의 협의가 이미 끝났다 하고선 우리측의 뒤늦은 구애에 못이기는 듯, 추가 가격인하와 각종 사업협력과 외교국방 협력을 덤으로 얻어냈다. 
 
프랑스와의 기존 계약합의를 과감히 번복하는 협상전술을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아랍 상인들의 의외로 치밀하고도 매몰찬 협상 태도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 끝난 것으로 여겨 요란스레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지만, 47조원 원전사업의 실질적인 협상은 이제서야 본격적인 협상라운드에 돌입한 것으로 보는 게 오히려 맞다.

이 부분, 중동지역에서 직접 건설사업을 수주하고 진행한 장본인인 이명박 대통령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리라 확신한다.

즉, 중동과의 비즈니스 협상이란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끝난 게 결코 아니며, 따라서 앞으로 상당기간 실제적인 쌍방간의 다양한 협상의제가 남아 있는 진행중인 협상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아직 종결되지 않은 협상, 적어도 기존 계약 내용을 끊임없이 흔들어 실속을 챙기는 협상전략 구사가 상당히 능하다고 알려진 그들이다.
 
지금처럼, 누가 무슨 협상전략을 어떻게 구사하여 어떤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라고 제 입으로 온 세상에 떠버리는 협상참여 당사자나 일부 언론의 태도는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는 끝나지 않은 협상을, 스스로 성공협상이라 자부하며 그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우리가 어떤 협상 전략전술을 구사했는지 자랑스레 떠들어대다 된서리를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중에서도 한미FTA협상은 그 대표적인 현재 진행중인 사례이다.
 
아직도 미 의회의 책상에서 수년 묵은 먼지를 뒤집어 쓴 체 공전하고 있으며, 미 의회 비준 협력을 빌미로 우리 정부와의 외교협상에서 크고 작은 양보를 꺼 집어 내는 데 약방의 감초처럼 미국 정부가 활용할 수 있었던 배경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의 섣부른 공치사와 언론 공개가 낳은 소치가 결코 작지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2009년 무역결산을 해 보니, 우리 나라가 이제 세계 아홉번째 경제대국으로 랭크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유사 이래 최초로 세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당당히 선 것이다.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한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한국은 선진부국의 원조에 기대야 겨우 연명이나 하는 최빈국으로 출발한지 불과 반세기 만에 달성한 위업이니 우리 스스로도 충분히 대견해 할 만하다.

자동차, 전자, 중공업,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피나는 노력과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기존의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하나씩 뒤로 물리치며 확고한 강자로 하나씩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으며, 그 영역은 나날이 확대되어 갈 것이며 확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국운이 떨쳐 나간다는 것을 핏줄이 떨릴 만치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 반세기 동안 구미 경제대국들의 경쟁대상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대한민국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바로 그 경제대국들과 거대한 이권을 다투는 무서운 경쟁자로 부각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부를, 대한민국의 기업을 진정으로 염려해 주고, 배려해 주는 국가나 기업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냉혹한 글로벌 비즈니스 전쟁에 아무런 특혜나 어드밴티지 없이 맨몸으로, 실력만으로 뛰어 들어 이기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로마의 검투사 같은 입장에 놓인 셈이다.

즉, 끊임 없이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며, 자신만의 필살기는 결코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아야 하며, 지나친 힘의 과시나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상대의 적개심과 과민반응 불러 일으키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되는 승자의 깊은 지혜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때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지혜를 갖지 못한다면, 하룻밤 반짝 타오르다 꺼지는 싸구려 불꽃처럼, 우리의 번영과 영광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미국의 FTA협상팀이 한미 FTA협상 전략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했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았다는 언론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없다. 한-EU FAT도 마찬가지로 EU 협상팀이 대한미국 협상팀을 상대로 어떠한 협상전략 전수를 구사하여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들이 실제로 작성한 협상전략보고서는 비밀문서로 분류되어 오랜 기간 햇빛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하필 대한민국의 협상팀은 그리고 언론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협상들에서 우리의 협상전략과 성과를 그리도 속속들이 기사화 하고 있는 것일까? UAE 측이 금번 협상을 자신들이 성공한 협상으로, 유리한 협상으로 확신할 수 있도록, 아니 최소한 한국 협상팀에 밀리지는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기사는 왜 이다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금번 UAE 원전 사업건은 당초 계획보다 가격이나 내용면에서 사실상 UAE의 요구를 과도하게 혹은 일방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없지 않아 적지 않는 부작용이 예상된다거나, 통상적인 국제 관례상으로 보더라도 UAE측의 요구는 다소 무리한 면이 없지 않다 라거나, 금번 계약건 관련 일부 문제 조항에 대해선 해당 인사에 문제의 책임을 물어 징계가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등, 현재 계약 내용의 번복이나 변경을 방지하고 향후 관련 협상에서 지나친 추가 양보 요구 의지를 약화시키는 언론의 국익을 위한 협상자적 역할이 아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더 분통 터지게 만드는 것은, 언론을 탓하기에 앞서 진정한 협상가라면 상대가 조금이라도 졌다고, 밀렸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말도 표정도 지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측 협상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단 말인가?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면, 성과가 큰 협상이었다면 그럴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처구니 실책을 지켜봐야 하단 말인가?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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