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부시, 한마디만 더 해주지 그랬어

이진우 기자I 2008.08.06 17:24:35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부시 대통령이 6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 집현실로 올라가던 계단. 그 계단 옆의 벽에는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있다.

부시 대통령과 나란히 걸어가던 이 대통령은 그 지도 옆을 지나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This is Dok-do(이게 바로 독도다)"라고 말을 건넸다. 부시 대통령은 시선을 돌려 쳐다보곤 "Is that?" 이라고 되물었다. 부시 대통령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I know"라고 한마디 더 했다.

2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청와대 기자실은 이 문제로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부시 대통령이 독도를 가리키며 'Dok-do(독도)'라고 했는지, 'Dakeshima(다케시마)'라고 했는지 아니면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이라고 했는지에 따라 파장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 그 2초 정도의 시간은 미국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독도에 대해 언급하는 첫 장면이 될 수도 있었던 찰나였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아주 애매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Is that 이 전부야? Is that Dok do가 아니고?" 하는 질문이 기자실 곳곳에서 터졌다.

청와대 기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Dok-do'라는 표현을 썼느냐 아니냐를 놓고 당시 현장을 찍은 필름을 여러번 돌려보기까지 했지만 웅웅거리는 녹화필름 속에서 들려오는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그게 전부였다.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참 아쉬운 대목이고 결과적으로 미국 쪽 참모들 입장에서는 '우리 대통령 순발력 참 대단하다'고 치켜세울 수 있을만큼 교묘한 수위조절이었다.

부시의 'Is that?'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저게 그 독도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게 그 말썽많은 그 섬이냐?"는 식의 애매한 의미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Is that Dok-do?(저게 그 독도냐?)'라고 했거나 'I know that is Dok-do(나도 저게 독도라는 거 안다)'라고 한마디만 더 붙였다면 부시의 본심과는 무관하게 '미국 대통령도 독도라고 말했다'거나 '미국 대통령이 독도의 영유권을 재확인했다'는 식으로 확대될 여지도 충분했다. '저게 다케시마냐?'고 했거나 '저게 리앙쿠르암이라는 걸 안다'고 했더라도 논란의 도화선이 될만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부시의 입은 아쉽게도(?) 매우 절묘한 지점에서 닫혔다.

특히 'I know'라는 부시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귀에 대고 한 말이어서 카메라에는 잡히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대통령 근처에 있던 '풀기자'가 얼핏 들었다고 전한 대목일 뿐이다.

한국민은 '저 섬이 독도라는 걸'알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싶어하지만 '저 바위섬이 골칫거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인지, '이 대통령이 독도 이야기를 왜 꺼냈는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여기서 말을 함부로 하면 큰일난다는 걸'알고 있다는 뜻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오후에 춘추관으로 들어온 이동관 대변인에게 기자들은 다시 부시가 '독도'라고 말했느냐고 물었지만 이 대변인 역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못들었다"면서 "독도라는 표현을 직접 하지는 않은 걸로 안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고 확대될 뻔 했던 그 사건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에게 독도를 가리키며 알려줬다'는 정도의 단신성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한국인들은 '부시, 한마디만 더 하지 그랬어'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목이지만 미국 외교관들은 '부시, 한마디만 더 했으면 큰 일 날 뻔 했어'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지도 모르는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마지막 궁금증. 이명박 대통령이 계단에서 독도를 가리키며 부시에게 'This is Dok-do'라고 말한 것은 미리 계획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즉흥 발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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