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조진형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여만에 귀국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과거 세계경영을 부르짖던 그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전에 비해 많이 야위고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김우중식 경영에 대한 재평가에서부터 동정론, 단죄론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 해석이 제각각입니다. 정작 본인은 침묵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온 국민의 관심은 김 전 회장의 입에 쏠려있습니다. 증권부 조진형기자 역시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큰 우주(大宇, big universe)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기적의 사나이(miracle man)".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우리 민족의 미래라고 봤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큰 우주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해체되기 직전 대우는 국내 40개 계열사와 396개의 해외현지법인을 거느린 초국적기업이었습니다. 18조3000억원의 자본총계와 83조8000억원의 자산, 62조8000억원의 국내매출을 자랑했습니다. 그 대기업을 호령하던 김 전 회장이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김 전 회장의 원대한 세계경영 정신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수출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그는 세계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는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며 1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고 하루에 3시간은 비행기에서 보냈습니다. 한국의 징기스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지난 2002년 김용옥 교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국내의 기업들과 국내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해외시장개척에만 주력했습니다. 8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해외에서 판매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식의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우는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데 성공했습니다. 특별 전세기로 남미, 동유럽, 유럽 등을 누비며 대우와 코리아를 심어놓던 그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희망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우는 해외금융으로부터 끊임없이 자금을 조달해야했고, 멈추면 곧 쓰러지는 자전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만 했어요. 성장주의노선을 대우가 견지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약소국으로서,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일어난 우리 조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로서 어떤 필연적 역사적 운명이 우리에게 부과되었던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의 원대한 세계경영을 바탕으로 한 대우정신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었지만 대우는 그 정신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우정신이 대우를, 넓게 보면 시장을 너무 앞서나갔습니다. 세계를 개척하려는 의지는 컸지만 이에 대한 밑바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암세포의 번식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대우는 스스로 일으킨 기업이 거의 없고 주로 부실기업을 인수해 성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 전 회장이 스스로 키운 것은 (주)대우가 유일하다는 핀잔이 나올정도였지요.
그는 특히 산업중심인 제조업에 기반을 두지 않고 무역과 금융을 통해 그룹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이런 성장과정을 보이던 대우는 세계경영이라는 기치 아래 부채를 늘려 문어발식 확장을 꾀했습니다. 자연히 막대한 부채가 생기고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바닥까지 추락한 것입니다.
막대한 부채를 막기 위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끝없이 발행하면서 투신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부채비율이 높았던데다 잦은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서도 외면받았습니다. 300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손실을 입히고 나라 경제를 휘청이게 해 국민 대다수에게 부담을 안겨준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의 목표는 미래지향적이었지만 그의 수단은 과거회귀형이었던 까닭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친 김 전 회장은 로비의 귀재라는 평을 듣습니다. 새로 기업을 세우지 않고 남의 것을 차지하려다 보니 권력층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는 초라한 모습으로 공항에 나타난 김 전 회장에게서 원대한 경영이념을 이루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경제사의 바탕을 보는 듯했습니다. FT는 대우그룹 파산이 세계 최대 규모이며 한국 최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고 "이제 한국 경제사의 한막이 끝나가고 있다"고 표현했더군요.
FT의 지적에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FT가 지적한 수수께끼를 반드시 풀어야 할 것입니다. 경제가 새로운 토양위에서 발전하기 위한 통과의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스스로 일구지 못한 세계경영의 이념을 차세대 기업인들이 이루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수께끼를 낱낱이 풀어줘야할 것입니다.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에서 그는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김우중이라는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꿈이 실현될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김 전회장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잘못을 숨김없이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또 세계경영을 가로막았던 요인들을 들춰내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정·관계와 기업의 유착관계도 그 암적 요인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만이 대우는 죽었어도 대우정신이 영원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기우에 그치길 바라겠지만 혹시라도 김우중리스트를 둘러싼 정치적 계산법이나 야합, 협상에 동조하거나 휘둘려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김 전 회장이 먼 훗날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