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서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연 이이남 담양 용소폭포 물 떠와 현미경 관찰 미생물 움직임 고전산수화에 풀어놔 곽희 '조춘도' 등 미디어·설치 15점 8폭 병풍 확장한 겸재 '금강내산'도 철학·방식 방향 틀고 AI대화로 작업
작가 이이남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에 건 자신의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금강내경’(2026, 480×220㎝) 앞에 섰다.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 단채널 영상, 사운드로 꾸린 작품은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1743·보물)을 8폭 병풍회화로 확장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세계를 겹쳐 완성했다. 전시된 다른 미디어 작품과 동일하게 9분 23초로 맞춰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꿈틀거린다. 아니 꼼지락댄다는 게 나으려나. 갤러리 벽에 걸린 프레임 ‘안’에서 말이다. 투명하고 매끄럽게 생긴 생물체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더란 얘기다. 둥그런 아이, 길쭉한 아이, 꼬리 달린 아이 등 모양도 이동도 제각각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살아있다’다.
그런데 난데없이 저들이 출현한 배경이 말이다. 산세가 첩첩이 쌓인 수려한 산수화다. 넓고도 깊은 그 산과 물, 나무를 백그라운드 삼아 작은 생물체가 이리저리 노닐고 있다고 할까. 정리하자면 저 프레임은 고즈넉한 수묵화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미세생물의 세상을 내보이고 있다. 생생한 움직임까지 그대로를 옮겨낸 ‘한 폭의 미디어아트’로.
이이남의 ‘미시산수-조춘도 no.2’(2026, 170×97.9㎝). 중국 북송 때 화가 곽희의 ‘조춘도’ 위에 담양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한 방울 물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세계를 얹어 완성한 미디어 작품이다. 9분 23초짜리 단채널 영상에서 미생물은 쉼없이 꿈틀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생명과 존재에 대한 근원을 회화적으로 꾸렸다. 보이지 않는 데서 보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듣는 작업이다. 감각을 포착하는 거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으레 떠올려지는 그 이름이다. 이이남(57). 지금 시대에서 미디어아트를 말할 때 일순위에 올릴 작가다. 압도적인 위치를 점한 백남준(1932∼2006)의 뒤를 잇는 ‘제2의 백남준’이란 수식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결은 다르다. 백남준이 ‘전위’에 기댔다면 이 작가는 ‘전통’을 기반하고 있으니까. 옛 그림에 디지털기술을 올려 태워 시대와 시절, 사조와 풍경을 바꿔내는 일이다.
이이남의 ‘미시산수-세한도’(2026, 109.3×191㎝).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국보) 속 노송의 몸체에 붙은 미생물이 마치 함께 호흡하는 듯 쉼없이 움직인다. 9분 23초짜리 단채널 영상으로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의 ‘미시산수-세한도’(2026, 109.3×191㎝) 중 부분을 확대했다.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미생물은 오른쪽에 적힌 제호 ‘세한도’(歲寒圖)와 ‘우선시상’(藕船是賞)이란 문구에까지 타고 오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흔히 말하는 ‘재해석’ 수준이 아니었다. 그이의 ‘신’(新)은 단순한 새로움이 아니라 혁명에 가까웠으니. ‘신-몽유도원도’(2007), ‘신-금강전도’(2009), ‘신-인왕제색도’(2009), ‘신-세한도’(2009) 등을 말하는 거다.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1734·국보)와 ‘인왕제색도’(1751·국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국보)를 뒤집어놨던 ‘사건’은 지금껏 따라다닌다. 감히 ‘국보 걸작’에 덧칠도 부족해 4∼8분여간 맹렬히 움직이는 그림(싱글채널비디오)으로 바꿔버렸던 거다. 담백했던 수묵화에 꽃·바람·비·눈을 심는 사계절의 변화를 컬러풀하게 심어내고 한구석 초가에는 불까지 켰다 껐다 했더랬다. 그러곤 인왕산 위로 여객비행기 한 대 고즈넉이 날리더니 이내 1만 2000봉 금강산 골짜기마다 크레인·송신탑을 세우고 전투기와 군용헬기를 무차별 출격시켰다. 낙하산이 새까맣게 하늘을 덮고 뿌연 연기가 금강산을 가려버린, 말 그대로 전시상황이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전도’(1734·국보·왼쪽)와 이이남의 미디어 작품 ‘신-금강전도’(2009). 작가는 겸재의 고즈넉한 금강산 풍경을 전투기와 군용헬기가 날고 낙하산이 까맣게 쏟아지는 7분 14초짜리 단채널 영상으로 뒤바꿨더랬다. 이번 개인전에는 나오지 않은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산수 자체에 대한 철학을 바꾼 ‘진화’
얼추 20년이 된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말이다. 이 장면 또한 적잖이 놀라울 터. 바로 그 작가가 멀리서도 보이는 거시세계를 반쯤 들어내고 눈을 비벼도 절대 볼 수 없는 미시세계에 들어섰으니까.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미디어 평면·설치작품 등 15점을 꺼내 꾸린 개인전은 작가 작업의 변화, 아니 진화의 현장을 펼친다. 비단 ‘영화에서 다큐’로 장르를 바꾼 ‘밖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산수 자체에 대한 철학을 바꾼 ‘안의 진화’가 들어있단 얘기다. 전시명은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중국 옛 문헌(‘국어’ ‘예기’ ‘사기’)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던 문구를 따왔다. 형체 없는 곳에서 보고, 소리 없는 곳에서 듣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야 쉽지, 이것이 과연 시각예술에서 가능키나 한 건가.
작가 이이남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에 건 자신의 미디어 작품들 곁에 섰다. 작가의 왼쪽은 ‘미시산수-강정산색도’(2026, 170.5×97.9㎝), 오른쪽은 ‘미시산수-조춘도 no.1’(2026, 170×97.9㎝)다.
“영산강의 발원지인 용소폭포에서 물을 채집해 그 한 방울 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생명의 근원이라 생각한 지점부터 짚은 거다. 그 안에서 태어나고 움직이고 소멸하는 흔적을 좇아가면서.” 굳이 먼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전남 담양의 영산강 줄기는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니까. 작가까지 키워낸 그 ‘생명의 근원’에서 수없이 꿈틀거리고 꼼지락대는 미생물을 건져낸 거다. 그러곤 작가 작업의 시그니처라 할 ‘고전 산수화’를 배경에 들였는데. 현미경으로 관찰한 미생물의 형체와 움직임을 그 산수화 위에 풀어놨다고 할까. 가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세상이었다.
작가 이이남이 담양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한 방울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전시작들이 세상에 나오는 시작점이 된 작업이다. 갤러리가 준비한 작가 작업 영상 중 한 장면이다(사진=학고재갤러리·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게 중국 북송 때 화가 곽희의 ‘조춘도’는 ‘미시산수-조춘도’(1·2, 2026)와 ‘두 개의 세계’(2006)로 변주됐고 중국 원나라 때 예찬의 ‘강정산색도’와 황공망의 ‘산장고일도’는 각각 ‘미시산수-강정산색도’(2026)와 ‘미시산수-산장고일도’(2026)로 그 속을 드러냈다. 예의 그 ‘인왕제색도’와 ‘세한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인왕산 능선을 타고 다니는, 또는 노송의 몸체에 붙어 함께 호흡하는 작은 세포들의 움직임이 ‘미시산수-인왕제색도’(2026), ‘미시산수-세한도’(2026)로 다시 걸렸는데. 결국 이들을 통한 작가의 메시지는 하나다. ‘생명은 어디서 시작됐고 존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가’를 곱씹어 보란 거다.
이이남의 ‘미시산수-인왕제색도’(2026, 84×146.5㎝) 중 부분을 확대했다. 둥글거나 길쭉한, 또 투명하고 매끄럽게 생긴 미생물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까이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국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겸재의 ‘금강내산’(1743·보물)을 8폭 병풍으로 세운 ‘미시산수-금강내산’(2026)으로 찍었다. 가까이서 보면 무수한 미생물의 소소한 흔적에 불과하지만 멀리 떨어질수록 금강산의 백색화강암 암봉들이 선명해지는 풍경. 여기까지 이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광대한 저 진경산수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작업의 젖줄이 된 용소폭포를 그대로 옮겨온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는 이번 전시에서 주연 이상의 주요한 조연이다. 흘러내리는 폭포수, 버티고 선 바위, 흔들리는 나뭇가지 등을 촬영해 다섯 대의 CRT 모니터에 나누고, 독립적인 미디어 작품으로 헤쳐 모았다. 모니터 탑을 담근 사각 프레임 속 찰랑이는 물까지 용소폭포에서 떠왔다고 했다.
이이남의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 120×120×236.5㎝·오른쪽).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전남 담양 용소폭포를 촬영해 물, 바위, 나뭇가지 등으로 쪼개 5대의 모니터에 나눠 실었다. 작가는 “CRT 모니터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빌렸다”며 웃었다. 건너편에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추산행려도’(2026, 170.5×97.9㎝)와 ‘미시산수-설계어부’(2026, 170.5×97.9㎝)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전경. 왼쪽으로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전남 담양 용소폭포를 촬영한 모니터 탑이 섰다. 물, 바위, 나뭇가지 등으로 쪼갠 각각의 풍경을 5대의 모니터에 나눠 실은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 120×120×236.5㎝)이다. 오른쪽은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1743·보물)을 8폭 병풍회화로 확장한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금강내경’(2026, 480×220㎝)(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AI에게 물었다 “정선이 현미경을 들여다봤다면?”
이번 개인전이 작가세계의 분기점이 될 건 분명하다. 철학과 방식이 방향을 틀었다는 것 외에도 말이다. AI를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였다는 점에서도 단순치 않다. “모든 작업의 데이터와 정보를 AI에게 다 일려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작품들”이라고 작가는 소개했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상상을 넘어선다.
가령 “정선이 현미경을 들여다본다면 뭘 그렸을까”를 묻는 작가에게 AI는 “산을 닮은 미생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진경을 봤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현미경으로 생명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는 “작은 것을 확대하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세계와 마주하는 일”이라 했고, “결국 ‘마이크로 산수’란 무엇인가”란 물음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지나간 시간을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나타나는 산수”란 답을 내놨다.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전경. 왼쪽은 설치작품 ‘두 개의 세계’(2026, 200×60×120㎝)다. 반으로 나뉜 곽희의 ‘조춘도’와 작가의 ‘미시산수-조춘도’가 물이 반쯤 찬 수조 안에 들어 있다. 수면을 사이에 두고 다른 크기와 밀도로 이어진 ‘한 세상’이다. 오른쪽은 ‘부경산수-조춘도 no.1’(2026, 170×130㎝). 미디어 작품이 아닌 ‘회화’ 조춘도다. 장지에 프린트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과연 누군들 아니었을까. “흥미롭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다”는, AI와의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소회가 예상 못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다만 이제껏 그랬듯 한 번도 ‘정지 화면’에 머문 적이 없던 작가의 행보는 다르다.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는 AI, 그 존재와 일으킬 시너지가 어찌 폭발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전시는 10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