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붕어대가리라는 말이 있다. 간신히 낚시바늘을 빠져 나온 붕어가 금새 다시 미끼를 무는 것을 두고, 그 머리 나쁨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붕어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실은 입 주변에 통증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없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큐 2,000의 시장이 같은 유형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도 대개 같은 이유다. 위험요인을 감지하는 정보전달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를 겪고서도 당사자의 잘못된 선택을 탓할 뿐 이러한 정보전달체제의 정비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03년 카드위기의 원인은 물론 카드회사와 당국, 투자자, 신용평가회사, 소비자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어우러진 결과다. 모두 나름대로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의 원인이 되었던 정보전달체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치열한 문제제기가 없었다.
금융의 역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과정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기 전에 미리 외양간을 고치면 최선이지만, 불행히도 이렇게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사고가 터지고 나서가 중요하다. 제대로 고치면 발전하고, 아니면 머지않아 다시 사고가 터진다.
외양간 고치기는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구체적인 행위규제를 도입하거나 강화하는 것이다. 동일인여신한도, 동일인자산편입한도, LTV, BIS, CAR 등이 그런 것이다. 또 하나의 방향은 정보흐름을 개선하는 것이다. 덕산사태(고려시멘트 부도)가 여신정보집중의 계기가 되었고, 외환위기 이후 채권시가평가와 전자공시시스템(DART)이 도입되었다.
카드위기 이후의 외양간 고치기로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카드위기의 뇌관이 되었던 MMF에 대한 규제강화다. MMF의 과도한 카드채권 편입이 인출사태(Fund run)를 맞아 카드위기로 이어졌다는 반성이 반영되어 강력한 동일인자산편입한도 규제가 도입된 것이다. 자산운용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르지만 어쨌든 MMF는 이제 어지간한 신용이슈에는 흔들리지 않는 금융상품이 되었다.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은행카드와 전업카드로 이원화되어 있던 정보관리체제도 여전협회로 일원화되었다. 카드사 신용도의 척도가 되는 연체율과 조정자기자본비율(CAR) 계산기준도 보다 강화되었다.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외양간 고치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드위기의 또 다른 연결고리였던 채권 발행구조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두 가지 측면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단기자금 위주의 자금조달(발행기업의 유동성리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자금조달 경로의 편중(유통시장의 유동성리스크)이다. 이런 문제는 성격상 당국의 행위규제보다는 정보흐름 개선을 통해 시장 스스로 풀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해법 찾기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미지근한 설거지는 결국 지난해 10월 회사채시장 경색의 원인이 되었다. 몇 가지 외부요인에 의해 채권형 펀드의 환매가 이루어지면서, 그 영향을 곧바로 캐피탈/카드채권이 받았고 이로 인해 충격이 갑작스레 확대되었다.
예전보다는 장기화가 이루어졌다지만 여전히 단기자금 의존도가 높았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채권의 분포가 투신 및 리테일 시장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채권펀드시장이 캐피탈/카드채권의 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다.
캐피탈/카드채권이 유통시장에 쏟아지고 현금화가 어려워지면서, 그 파장은 공모 회사채 전반으로 빠르게 번졌다. BBB회사채보다 우량한 AA와 A등급 회사채의 수급이 더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량등급의 신용스프레드만 크게 확대되는 기현상도 빚어졌다. 상대적으로 투신의 투자 비중이 높았던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발행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었다. 다행히 마침 대규모 해외사채 발행을 진행하고 있던 기업도 있었고 은행의 사모사채 수요도 확대되면서 기업자금 경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공모회사채 시장은 상당기간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큰 비용을 치루지 않고 소중한 경험을 얻은 것일 수도 있다. 기업의 펀더멘탈에 문제가 없어도 채권의 만기구조나 투자자 분포에 의해 신용경색이 얼마든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펀더멘탈 못지않게 채권의 만기구조나 투자자 분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투자자의 현실여건에서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캐피탈과 카드의 이런 상황을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닌 짐작만으로 눈앞의 투자기회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투자자들을 ‘수건 돌리기’ 게임으로 내몬다.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유동성리스크와 관련한 정보제공 체계가 수립되어야 하고, 이를 신용평가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투자는 투자자의 책임이지만 게임의 규칙과 환경까지도 모두 투자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CP정보를 완전공개하고 보유자별 채권분포 정보를 새로이 제공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투자자의 의사결정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발행기업의 재무정책도 당연히 변한다. 그러면 우리 시장은 또 한단계 성숙한다.
최근 사모사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정보흐름과 관련하여 한가지만 더 짚어보자. 사모사채가 급증하던 지난해 4분기 각종 정책자료는 공모회사채 시장의 부진을 기업의 자금수요 부진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사모사채와 관련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공모사채의 사모사채로의 이동도 감지할 수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이슈가 불거진 것에 감사할 일이다.
정책실패와 시장실패를 막으려면 정보흐름의 개선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 우리는 붕어대가리가 아니니까!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 기업분석부 연구위원/Credit analy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