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수헌기자] 대기업 1개 사업부의 1인당 연간 영업이익 86억원, 영업이익률 76%. 쉽게 믿기지 않는 이 기록은 SK(003600)㈜ 석유개발사업부 이야기다.
우리나라 5대 그룹 상장사의 1인당 영업이익은 2700만원이다. 1인당 매출은 2억1500만원 수준. 이를 감안할 때 SK㈜ 석유개발사업부의 실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22명 규모 석유개발팀 이익이 4개 계열사 이익 합보다 많아
SK㈜는 석유개발사업에서 올 3분기까지 매출 1760억원, 영업이익은 1330억원을 올렸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연간으로 매출 25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은 너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SK㈜ 석유개발사업부 임직원은 몇명일까. 해외지사 인력까지 포함해 고작 22명이다. IMF 전 40명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영업이익 1900억원은 지난해 SKC, SK케미칼, SK가스, SK제약 등 SK그룹 4개 주요 계열사 영업이익을 모두 합한 수치(1865억)보다 많다.
이익 수준에만 놀랄 일은 아니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산유국의 꿈`을 불어넣고 있는 이 기업은 에너지 개발에 관한 한 세계 메이저 민간기업들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대통령 말대로 기업이 곧 나라다.
에너지 대표기업에게는 정부와 국민의 정책적 지원과 성원이 더 필요하다. 아직은 SK㈜ 명함만 가지고 석유개발사업을 하기에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에너지 개발에선 `SK㈜가 곧 나라`, 미얀마 실패가 藥이 됐다
지난 95년으로 돌아가 보자. SK㈜ 석유개발팀은 미얀마 깊은 정글 숲에 박아놓은 유전 시추공을 뒤로한 채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본사의 전격적인 철수명령이 떨어진 것. 91년 이래 3년동안 집중적으로 석유를 캐기 위해 시추공을 뚫어왔지만, 결과는 항상 `드라이 홀(dry hole)`로 판명났다.
시추에 투자한 거금 7000만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곳은 유전 지층이 뒤집어진 곳이었다. 지표면에 가까운 지층에서부터 기름이 흘러 나오니 깊은 땅속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름이 매장돼 있겠냐는 생각만 했을 뿐, 지층이 거꾸로 뒤집혀진 곳인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 결국 SK㈜는 돈만 날린 채 아모코사(社)에 지분을 무상양도한 뒤 미얀마에서 떠났다.
"SK㈜가 지분 100%를 투자한 단독운영 광구였었는데, 한마디로 참혹했지요. 원유를 들여와 정제해서 팔기만해도 잘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직접 탐사 개발에까지 뛰어든 것은 최고 경영진의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으니 당시 최종현 회장도 크게 실망했습니다"
석유개발사업부 김현무 상무는 "그러나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후에 더 좋은 약이 됐다. 그 뒤로도 SK㈜는 석유개발에 박차를 가해 예멘, 페루, 이집트, 베트남 등 7개 광구(3억 배럴)에 참여, 석유를 뽑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SK㈜ 투자몫에 해당되는 것은 하루 2만5000배럴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개발생산하는 원유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이외에도 11개국 17개 광구에서 탐사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더 큰 성과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국가대표 기업에게 힘을 주세요
한때 IMF사태와 한국 디스카운트의 주범인양 몰려왔던 재벌기업들이 이렇게 국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20여년 전 시작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포기하지 않은 SK㈜는 해외 글로벌 메이저들이 독식해 온 자원개발 시장에서 한국 대표선수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사옥 32층 SK㈜석유개발사업팀 사무실. 직원들은 이 곳을 `섬`이라고 불렀다. 철저하게 해외에서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석유개발이라는 독특한 사업성격상 사내에서도 좀 특별한 곳으로 취급받고 있어 `섬`이라는 말이 나올법도 하다.
최근 이 `섬`에서는 페루 카미시아 유전가스전 사업화(SK㈜ 컨소시엄 지분 17.6%)에 성공했다.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서 가스와 석유를 생산, 험난한 안데스 산맥을 지나 태평양 연안까지 깔린 730㎞짜리 가스파이프와 530㎞짜리 오일파이프로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아마존 정글이라 전세계 큰 환경단체들이 주의깊에 관찰하고 있었죠. 생태계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개발해야 했습니다. 비행기로 장비들을 반출입 하다보니 운반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1년 중 반은 우기, 반은 건기라 가파른 안데스 산맥에 폭 10미터 길을 닦고 파이프 라인을 까는 작업은 건기에만 가능했습니다.
우기에 길이 무너져 공사를 다시 하는 일도 많았어요. 컨소시엄 회사들과의 토론과 합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임직원들이 한달에 한번 정도는 한국에서 페루 카미시아까지 30시간 출장길을 달려가야 했는데, 갔다오면 살이 3~4㎏씩 빠져 `다이어트 코스`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런 역경을 이겨낸 결과물이 바로 SK㈜의 실적이다. 석유사업개발팀 김현무 상무는 "에너지 개발사업은 리스크가 크지만 SK㈜ 뿐 아니라 국가경제, 국가안보에도 기여한다"며 "회사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기면서 `외국인 기업`으로 간주돼 정부 정책자금 지원을 못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삼성은 일본기업일 껄?
기업이 곧 나라인 사례는 많다. 이달초 삼성그룹 임원들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해외경제실장 겸 금융실장)와 삼성인력개발원 신태균 상무는 이달초 탄자니아 한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다 깜짝 놀랐다. 이들은 케냐와 탄자니아 정부 초청을 받아 두 나라 정부관료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삼성 신경영` 강연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날아온 터였다.
현지 삼성 지사장이 룸 예약을 했는데, 예약 리스트에 `Mr Kim, samsung, Japan`이라고 기록돼 있었던 것. 호텔 예약 담당자는 `삼성`이라는 기업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라면 일본 기업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삼성 임원들은 "삼성은 엄연히 코리아 기업"이라고 호텔직원에게 알려줬다. 출장수행을 했던 삼성그룹 박형근 과장은 "호텔측 실수 계기로 `글로벌 기업 삼성=코리아`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다"며 "기업이 잘될수록 국가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호텔에서 만난 유럽인들에게 "코리아에서 온 삼성 직원"이라고 소개하면 삼성 휴대폰을 내보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해, 강한 기업이 곧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재벌기업의 개혁이 저개발국 국가경영 벤치마크
삼성의 신경영 전파단은 이건희 회장 개혁 10년 성과와 인재육성 전략, 교육프로그램을 양국 대통령실과 정부 고위관료, 기업인들을 상대로 강연했다. 이런 내용들은 현지방송 메인뉴스 시간에 방영됐다.
박 과장은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와 경영에 대한 많은 이론을 접했지만, 이론일 뿐 실제 적용은 힘들었다"며 "삼성과 같은 성공한 기업의 모델이야말로 경영이론의 교과서"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삼성이 신경영을 전파하러 간 아프리카 두 나라는 40년전이나 지금이나 국민소득이 거의 비슷한 300달러 수준. 우리나라가 60년대초만해도 국민소득 100달러의 세계 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삼성같은 기업은 이제 저개발국의 국가경영 벤치마킹 대상까지 됐다.
박 과장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의 땅으로부터 "그 때 한국의 삼성을 벤치마킹한 것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들려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